나만의 퀘렌시아(안식처)가 있나요?
힘껏 일상을 달리고는 있지만, 문득 기운 빠지는 날이 있다. 그럴 땐 나만의 방식으로 하는 충전이 절실하다. 집 앞 도서관 자료실 3번 자리에서 책 보기, 좋은 음악을 들으며 걷는 밤 산책, 시원한 바다 풍경이 보이는 카페의 창가 자리 등 특별하지 않더라도 위안을 주는 공간이 있다. ‘퀘렌시아(Querencia)’는 스페인어로 투우장의 소가 싸움 중 지쳤을 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특정 구역 즉 피난처나 안식처, 회복의 장소이다. 화성인의 퀘렌시아는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나만의 퀘렌시아(안식처)가 있나요?
어린 시절에는 책상 아래에 의자 2개를 마주 보게 놓고 그 위를 이불로 덮은 공간을 좋아했다. 거기에 들어가면 좁은 공간이 아늑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시작한 캠핑, 차박에서 좁은 트렁크에 누우면 어렸을 때 좋아한 책상과 의자 사이 공간의 안락함이 다시 느껴지곤 한다. 주말이나 평일 저녁 좋은 곳에 가서 차 트렁크에 누워서 시간 보내는 것, 그것이 나만의 퀘렌시아다.
딸의 결혼으로 인해 생긴 남는 방에 마련한 작은 영화관이 나만의 퀘렌시아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영화관을 가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던 와중에 OTT 시장의 세계적인 유행으로 넷플릭스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소싯적에 봤던 명화를 다시 찾아보며 옛 기억을 되살려보고, 잠을 줄여가며 깜빡 놓친 화제의 드라마를 몰아보고, 매번 새로 올라오는 신작들을 놓칠세라 챙겨보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비할 수가 없다. 직장에서 돌아오면 식구들 저녁을 챙기고 설거지까지 마친 후 간단한 주전부리와 차 한 잔을 챙겨 행복한 입장을 한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기꺼이 60인치 PC 모니터와 아늑한 소파를 선물한 아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나만의 퀘렌시아에서 한껏 행복한 힐링을 한다.
몇 년 전 갑작스레 쓰러진 적이 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로 몇 달 지내다 보니 몸이 힘들었던 거였다. 아이들을 돌봐야 했기에 강해져야겠노라 다짐했지만, 코로나19로 실내에서 꾸준히 운동하는 것도 힘들 때였고 그렇다고 집에만 있다가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운동화를 신고 어디든 걸어보자며 나섰다. 그때 집 근처 오산천이 퍼뜩 떠올랐다. 그렇게 오산천 둘레길과 힐링하며 친해졌고, 충전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나는 건강과 여유를 되찾았다. 봄에는 아름다운 벚꽃 길들이, 여름엔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 그늘들이, 가을엔 단풍의 향연이, 겨울엔 동화 속에 들어 온 것처럼 아름다운 설경이 나를 맞이해준다. 오산천은 빠르게 걷기에도, 천천히 걷기에도 최적의 장소다. 그 속에서 차분히 나무, 들꽃과 풀들, 파란 하늘, 초록색 강의 풍경들을 바라보며 보내는 시간과 공간이야말로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퀘렌시아다.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을 때,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고 온갖 상념과 스트레스로부터 온전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화성의 생태보고 중 하나인 화성비봉습지공원이다. 나는 사무실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이곳을 나만의 퀘렌시아로 삼고 자주 찾는다. 이곳에서 만난 자연과 생태가 무한한 사랑과 안식을 주기 때문이다. 자연만큼 아름다운 예술가가 없고 훌륭한 스승이 없다. 그런 사계절 형형색색의 생태와 만날 수 있는 휴식과 학습의 장이 바로 나만의 퀘렌시아, 화성비봉습지이다.
아이들 나이가 서른을 넘었으니 대략 15년 전 즈음의 일이다. 어느 날 저녁에 남편과 언쟁이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내가 남편을 오해했던 일이었지만, 그게 무슨 일이든 오해였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다 사실인 양 괴로운 법이다. 어쨌든 그 일로 며칠 동안 고민하다가 용기 내어 물어보자 남편은 엄청 신경질적으로 화를 냈다. 순간 나도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긴 했으나 남편 성격상 더 대꾸할 사람도 아니고 나 또한 애들 앞에서 싸우면 안 되겠기에 일단 집을 나와 버렸다. 그리고 집 주위를 걸었다. 걷다 보니 괜히 서러워서 눈물이 나왔다. 생각해보니 결혼 후 한 번도 싸운 적 없는 것 같은데 뭐 이딴 일로 나를 서럽게 하나 싶어서 남편이 야속하기도 했다. 집에 금방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친정이 코앞이었지만 엄마를 걱정시켜 드릴 순 없었다. 갈 곳이 없어 거리를 헤매면서 내가 갈 곳이 없나 서러워졌다. 그 순간 눈앞에 들어온 ‘24시 사우나’. 단골로 다니던 집 앞의 사우나 건물이었다. 안은 따뜻하고 안락했다. 따라오는 시선도 없고 한동안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 그렇게 우두커니 한참을 앉아있다 손발만 씻고 나왔다. 열두 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가니 잠시 후 들어온 아들이 어디 갔었냐며 여태 찾으러 돌아다녔다고 말하는데, 아들의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내 마음 다 이해한다는 듯 내 얼굴을 핥아대는 강아지도 그렇고. 그날 속상한 마음으로 밤거리를 헤매던 내게 그 사우나는 나를 따뜻하게 품어준 나만의 퀘렌시아가 아니었나 싶다.
나의 퀘렌시아는 서재인 것 같다. 책을 읽는 건 아니고 서재에 있는 추억의 소품, 그림, 일기, 노트 그리고 여행에서 모은 엽서나 팸플릿 같은 것들을 보면서 당시의 기분과 여행의 자유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최근 깨끗하게 닦은 피규어들을 둘 곳이 없어서 비닐 팩 속에 차곡차곡 넣어 서재에 두었는데 가끔 다람쥐처럼 비닐 팩 속을 뒤적거리면서 구경하기도 한다. 독서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책 모으는 것과 추억을 돌아보는 걸 좋아해서 서재에 오면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특히 추억의 물건들을 볼 때면 당시의 상황과 심경이 느껴져 지금을 위로받고는 한다.
지친 삶에 위로를 전해주는 전곡항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면 탁 트인 넓은 공간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럴 때마다 서해 가까이에 거주하는 특권으로 전곡항을 찾곤 한다. 요즘은 해도 길어지고 날씨도 무척 좋아서 퇴근길에 자연스럽게 전곡항으로 자동차 핸들을 돌리곤 한다. 이곳은 내게 참 추억이 많은 곳이다. 먼저 떠나신 아빠께서 이곳 바다를 누비며 선박 선장으로 일하셨고, 우리 가족의 울고 웃고 행복했던 삶이 다 담긴 곳이다. 그만큼 값진 추억이 담겨있어 삶에 지쳤을 때 그 어떤 곳보다도 위로가 된다. 때로는 엄마와 함께 이곳을 거닐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혼자 노래를 들으며 전곡항의 노을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바다가 주는 위로를 듬뿍 받고 간다. 이전보다 전곡항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면서 좋은 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만 간직하고 싶었던 소중한 이 항구를 모두와 공유하게 되는 것 같아 살짝 아쉬움도 있다. 예쁘다고 알려진 서해 노을 중에서도 전곡항의 노을 지는 따뜻한 모습은 하루의 피로가 씻겨질 만큼 황홀하고 멋지다. 전곡항은 자연 그 자체이자, 옛 추억에 위로를 얻는 나의 소중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