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날, 누구와 어디에서 보내고 싶나요?”
언젠가부터 이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고작 몇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19 상황이 1년이 훌쩍 넘도록 계속되면서 우리의 익숙한 일상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그토록 별것 없다 느꼈던 일상 속 하나하나, 그리고 나와 함께하고 있는 모든 것이 더욱 애틋하고 소중하다. 화성인들은 이 시기, 누구와, 또는 어떤 것과 함께 공존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우리 가족은 매년 마지막 날 삼겹살을 먹는다. 올해 12월 31일에도 남편, 아들 손 붙잡고 콩나물무침이 근사한 동네 단골 삼겹살집에 가려고 한다. 상추쌈에 한 해 묵은 칼칼함과 아쉬움을 삼겹살이랑 같이 꽉꽉 담아, 꼭꼭 씹어, 꿀꺽 삼켜 버리고, 소주잔에 담은 이슬처럼 맑고 깨끗한 소망 한 잔씩 쭈욱 들이키고, 내 걱정 남편 근심 아들 고민까지 뜨거운 불판 위 고기, 김치와 함께 조각조각 잘게 찢어 달달 볶아 긁어먹고, 일어서서 집으로 가는 길엔 겨울 제철 음식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고 올해의 ‘베스트 흑역사’를 뽑으며 깔깔거리다가, 우리 가족 손 꽉 잡고 건강하게 있어 주고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다고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고 간지러운 말도 꼭 하려고 한다.
내 어린 시절의 겨울은 그저 춥고, 또 추웠던 길고 긴 날들이었다. 특히 12월의 마지막 날 그 추위는 절정이었다. 넉넉지 못했던 가정형편 탓도 있겠지만, 살기 바쁜 부모님 얼굴조차 제대로 마주하기 힘들어 마음마저 차가운 겨울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엄마가 된 나의 겨울은 따뜻하다. 따뜻한 집에서 가족 모두 함께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평범해 보이지만, 그것이 힘든 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감사하다. 올해 12월 31일에도 따뜻한 집에서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과 함께 따뜻한 밥을 먹고 싶다. 그 따뜻함을 먹고 따뜻한 사람이 되라고 눈으로 말해주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평범한 일상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2023년 11살이 되는 시윤아, 10살이 되는 시완아, 엄마는 겨울이 추운 줄만 알았는데 너희를 만나고 겨울도 이토록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단다. 엄마는 너희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2022년 12월 31일, 화성으로 이사 와서 처음으로 맞는 2022년의 마무리는 가족의 보금자리인 우리 집에서 지난해 입양한 강아지 ‘로아’와 함께 근사한 연말 파티를 하고 싶다. 화성시도우미견나눔센터에서 만나 가족이 된 로아, 성실하고 다정한 남편, 사랑하는 두 딸과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한 일들을 적어 감사 나무에 주렁주렁 달아보려고 한다. ‘근무지 이동으로 적응이 힘들었지만 새로 배우게 되는 것이 많아 감사한 마음이다’, ‘로아 털이 온 집에 풀풀 날려 청소는 힘들지만 로아가 온 가족에게 찐한 사랑을 가르쳐주니 감사하다’ 등등. 이렇게 감사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서로를 껴안으며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고3 학생인 나는 작년 여름방학부터 입시에 전념하느라 가족과 한 식탁에서 밥을 먹어본 기억이 희미하다. 항상 빠듯한 스케줄로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빵으로 혼자 대충 때우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 내게 식사는 귀찮고, 시간만 잡아먹는 행위로 느껴졌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유년 시절 식탁은 인스턴트 음식이 올라간 좁은 편의점 식탁이 아니라, 따뜻한 쌀밥과 가족 간 주고받는 대화들이 있었는데 말이다. 입시를 끝까지 잘 마무리한 뒤, 예전처럼 따뜻한 대화가 가득한 식탁에서 가족들과 올해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싶다. 입시 준비하느라 고생한 나 자신뿐만 아니라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아낌없이 지원해주신 부모님과 한껏 예민했던 내 성질을 다 받아준 동생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고, 그동안 수고했다고 위로도 받고 싶다. 누군가에겐 마지막 하루가 그저 다른 하루와 똑같이 느껴질지라도, 내게는 10대의 마지막 하루이자 20대를 시작하게 되는 하루라는 생각에 굉장히 뜻깊게 느껴진다. 이런 하루를 가족과 따뜻하게 마무리하고 나면, 앞으로의 인생에 두려움과 고난들을 마주쳐도 그때의 기억으로 다시 한번 일어서고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따뜻한 추억은 생각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니까. 정말, 그날에는 펑펑 흩날리는 눈 대신 행복이 흩날렸으면 좋겠다.
올해의 마지막 날은 식상하지만 당연하게도 내 가족과 함께 있고 싶다. 여느 때처럼 내가 만든 정성스러운 밥상이겠지만, 단 하루라도 남편에게는 우울증 환자가 아닌, 아이들에게도 마녀가 아닌, 누가 봐도 정상적인 나 자신으로 가족들과 어우러지고 싶다. 더없이 행복한 가정. 단 하루라도 그렇게 지내고 싶다. 단 하루라도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의 마음이 편안하고 나로 인해 행복한 가정이 되어 올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43년 모태솔로 동생이 12월 31일에 결혼한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혼자 다 견뎌내고 열심히 살던 동생이 드디어 좋은 짝을 만났다. 짚신도 짝이 있다던 어른들의 말씀이 맞나 보다. 멀리 거제도까지 시집을 가게 되어 걱정되지만 늦게 만난 만큼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잘 살길 바란다. 동생 결혼을 축하하러 오시는 일가친척분들과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 보낼 예정이다. 이제 평생 2022년 12월 31일 마지막 날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사랑하는 순원아~ 행복하게 잘 살아~♡
책을 읽다 문득 달력을 봤다. 그러고서야 올해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것을 알았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학생인 나로서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은 또 내일 같기에 지나가는 나날을 크게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알아챈 김에 생각해봤다. 남은 이 한해를 어찌 보낼까. 올해의 마지막 날은 토요일로, 놀기에 좋은 날이다. 그러나 지금껏 신정과 설날은 챙겨 봤어도 마지막 날은 기념하지 않았기에 뭘 해야 좋을지 막연하기만 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기로 했다. 낮에는 아마 공부를 할 것이다. 아침이 지난 시간에 느지막이 일어나 학원에 가거나, 학원이 쉰다고 하면 독서실에 가겠지. 만약 학원에 간다면 시시덕거리며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점수 더 올릴게요.”하며 수다를 떨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가면 나와 마찬가지로 막 귀가한 가족이 있겠지. 그럼 내년의 목표를 떠들며 일련의 계획을 나열해 보리라. 그렇게 어느 하루와 다를 바 없는 평탄한 날을 보내리라. 오늘은 어제와 같고, 또 내일과 같기에. 내년도 올해처럼 즐거울 거야, 마음속으로 가만히 읊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