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3.1운동 만세길

기억을 만드는 길 위에서

생전의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를 가리켜 ‘캄캄하고 추웠던 계절’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제 막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어린아이가 보기에도 세상은 춥고 서러운, 고난의 계절이었던 것 같다. 목숨을 건 만세로 일제의 겨울을 이겨냈던 사람들을 기리며 그의 후손들이 길을 만들었다. 100년 전, 어둠을 뚫고 행진하던 만세꾼들을 기억하기 위해 나는 100년 후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것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화성시문화재단 독립운동문화팀

학예사 김영희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2019년에 개통한 ‘화성 3.1운동 만세길’을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프로그램과 홍보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요. 당시의 사료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뿐만 아니라 답사 해설 프로그램을 기획해 방문객에게 좀더 풍성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화성 3.1운동 만세길의 역사적 배경을 이야기해 주세요.

1919년 4월 3일에 화성 장안, 우정면에 거주하는 면민들이 일제 치하에서 빼앗긴 자유를 돌려받기 위해 관청을 파괴하고 만세 시위를 전개한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어요. 당시의 사건 기록과 재판 증
거를 근거로 역사적 사실을 고증할 수 있었죠.

당시 만세운동을 ‘화수리 항쟁’이라고 부르기도 하더라고요.

1912년에 제정된 ‘조선 태형령’에 따라 일본 순사는 재판을 거치지 않고도 한국인을 구타할 수 있었어요. 일제는 3.1운동의 전국적인 확산을 막기 위해 독립운동 주동자 색출에 열을 올렸죠. 지금은 사라진 화수리 주재소(일본 순사가 머무르며 사무를 보던 기관)는 명령을 듣지 않거나 통치에 비협조적인 사람을 벌주거나 관리하던 장소였어요. 이에 면민들은 만세운동과 함께 화수리 주재소를 파괴함으로써 독립을 향한 의지를 보여줬어요. 그 과정에서 주재소 소속 일본인 순사 ‘가와바타’가 대치 중이던 군중에게 총을 쏘았고, 면민 1명이 죽고 1명이 부상당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그러자 성난 군중이 가와바타를 처단한 사건을 화수리 항쟁이라고 불러요.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 만에 화성 3.1운동 만세길을 조성하게 되었다고요. 무엇을 근거로 길을 만들게 됐나요?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당시 마을 주민들이 행진하던 길, 산, 장소를 재구성하고, 만세시위에서 활약한 주요 인물의 흔적(가옥, 묘소, 희생 장소 등)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선정했어요.

15개의 주요 지점 중 특별히 의미 있는 곳을 꼽아주세요.

먼저 만세시위의 근거지로 활용된 쌍봉산을 꼽고 싶어요. 4월 3일 만세시위가 일어나기 이전부터 우정, 장안 일대에 봉화시위가 일어났어요. 수촌리 개죽산의 봉화를 신호로 조암리 쌍봉산 등에서 일제히 봉화가 치솟았고, 산 위에 모인 군중은 만세를 불렀죠. 산 정상은 인근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장소여서, 만세시위를 독려하기에 좋은 곳이었을 거예요. 그다음엔 당시 만세시위를 주도한 차병혁 선생이 거주하던 가옥이에요. 보수한 흔적이 좀 있지만 가옥의 위치나 형태가 거의 그대로 유지되어 있어, 독립운동가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장소죠.

아무리 사료가 남아 있다 해도 새로운 길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수지처럼 당시와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장소들이 있어서, 만세꾼들의 길을 100퍼센트 완벽히 재현할 수는 없었어요. 또한 새로 도로가 조성된 곳은 걷기 체험을 하기에는 위험한 부분이 다소 있었죠. 하지만 그와 관련해 참가자들에게 미리 안내해 드리고,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하루 만에 만세길을 완주할 수 있을까요?

화성 3.1운동 만세길은 총 길이가 31킬로미터에 달해요. 그래서 하루에 다 돌기보다는 지점을 나누어 여러 번에 걸쳐 체험하시길 추천할게요. 생태 체험에 기반한 제주 올레길에 비교하자면 여전히 미비한 점이 많아요. 다만 올해 하반기까지는 길을 정비하고, 시민들이 걷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행사장을 조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추천하는 코스가 있나요?

우선 만세길 방문자센터를 시작으로 화수리 주재소 터와 최진성 집터를 추천해요. 2킬로미터(도보 왕복 60분) 안에 세 거점이 있어, 처음 걷기에 적당하죠. 만세길의 각 거점은 주차 시설이나 화장실 사용이 어려운 곳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편의 시설 안내를 받고 코스를 짜는 게 좋아요. 만세길 방문자센터를 시작점으로 두는 또 다른 이유는 스탬프 투어를 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만세길 방문자센터에서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거점마다 설치된 스탬프를 이용해 스탬프북을 채워 나갈 수 있어요. 스탬프를 다 모으고 방문자센터의 확인을 받으면 완주 훈장을 지급해 드리니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체험에 참여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날씨의 영향을 받는 야외 활동이기에 비나 눈이 온 후 땅이 질어질수 있어요. 착용한 신발이 오염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주의하셔야 해요. 그리고 축사의 개나 거리에 사는 개가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하셔야 하고요.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점은 어느 장소를 가든 일제에 저항하던 만세꾼들을 기리고 독립 의지를 기억하는 체험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세요.

만세길 방문자센터에서 투어 관련 상세한 안내를 받으실 수 있고, 기본 정보 역시 현장 안내자를 통해서 들으실 수 있어요. 만세길 해설사가 함께하는 답사 프로그램 역시 가까운 시일 안에 재개될 예
정이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화성3.1운동 만세길 방문자센터

방문자들의 휴식과 체험을 위한 공간으로 화성 3.1운동 만세길의 시작점이자 마무리 지점이다. 상주 직원이 있어 만세길 코스 설명은 물론, 스탬프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 방문자센터는 각 공간마다 여백과 채움이 적절히 고려된 배치로 방문자에게 사색의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IF 디자인 어워드 2020’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건축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 받았다.

차병혁 생가

만세운동을 주도한 차병혁의
생가다. 화성 지역 독립운동가의 생가 중 유일하게 보존된 곳이다. 생가 마당에 설치된 ‘만세 뜰’이라는 스틸 조형물이 마당을 울타리처럼 보호하고 있다. 만세를 하는 듯한 조형물 사이를 걸으면 거울에 난반사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는데, 아주 오래전 서로의 형상을 위안 삼아 만세를 외치던 그날의 풍경을 상상하게 된다.

수촌교회

1905년에 설립된 교회로 만세운동 당시 주요한 근거지가 되었다. 2천여 명의 군중이 참여한 만세시위의 보복으로 일제는 수촌리 마을의 가옥 42채 중 38채를 불태웠고, 그 과정에서 교회마저 파괴했다. 폐허가 된 마을과 전소된 교회는 사진 자료로 남아 일제 식민 통치의 실상을 드러내는 데 영향을 끼쳤다. 현재 수촌교회는 복원된 목조 예배당과 양옥 예배당이 나란히 자리 잡아 그날의 기억을 증언하고 있다.

최진성 집터

결전의 날 최진성은 뒷동산에 올라 횃불을 올리며 만세를 불렀다. 그는 시위 후 일제의 검거망을 피해 달아났고, 일본군은 보복으로 그의 집에 불을 질렀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합심하여 독에 든 간장으로 불을 껐다. 시간이 지나 최진성의 집은 사라졌지만 그 터에는 그를 기억하기 위한 ‘만세문’ 조형물이 설치되었다. 녹슬고 단단한 문안으로 들어가면 철을 통과해 몸에 닿는 빛의 조각들이 어떤 희망의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화성3.1운동만세길방문자센터

 

A.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화수동길 163

H. jeam.or.kr

T. 031 358 0301

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