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빈 작가의 방

식물, 기계를 만나다

식물은 생태계를 이루는 무리이고,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이다. 그리고 적도부터 극지방까지 거의 모든 곳에 분포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떠 저녁에 눈을 감기까지 우리는 푸르거나 하얗거나 다채로운 빛깔의 식물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적이 없다. 근래에는 대기오염 때문에 공기정화식물을 집안에 들이기도 한다. 가끔은 텔레비전 옆에 있는 전자파 차단 식물을 보며 생각을 한다. 식물에도 감정이 있나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어릴 적에는 콜라보가 타협하는 것 같아 싫어했는데, 이제는 다양한 분야와 콜라보를 하는 회화 작가입니다. 나이가 든 건가요?(웃음) 대학에서는 회화를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공부했으며 지금은 강의와 국내·외 전시를 하고 있어요. 주로 인터랙티브(interactive: 대화식, 쌍방향의)한 활동들을 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언택트 시대가 되었죠. 하지만 오히려 감염병 시대가 ‘만남’, ‘연결’, ‘소통’의 방식을 찾아내게도 해요.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부터 식물을 주제로 드로잉, 회화, 식물 생장과정, 식물 로봇을 통해 식물이 기계를 만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식물과 기계, 생소한 매칭이죠?(웃음) 사람들이 처음에는 낯설어하지만 그림과 기계를 동시에 보면 호기심과 관심을 보이기도 해요. 저는 그 호기심을 더 키우기 위해 식물을 연구하는 학자를 만나고, 새롭게 출현하는 기계를 공부하고 있어요. 회화 작가가 식물과 과학 관련된 책을 읽는 모습, 낯설지만 재미있지 않나요?

소수빈03_tropical-agroforest-01,-163x130cm,-oil-on-canvas,-2020

당신의 작업실은 어떤 곳인가요?

학교 수업 이외의 시간에는 작업실에 나오는데, 공장 다니느라 바빠요.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는 모습만 상상하셨죠?(웃음) 원하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구소와 을지로 공장에 의뢰하고 제작 과정을 점검해야 해요. 또 새로운 기계를 구경하며 원리를 파악해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는지 구상도 하고요. 제 작업은 현실에 기반하기에 제작 의뢰 전에는 전문가에게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지 자문을 구해요. 저는 회화 작가이고, 테크놀로지는 수단이기 때문에 과학자들만큼의 전문가가 아니에요. 예술가이기 때문에 ‘가설’과 ‘증명’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장점도 있어요.

식물의 생장과정이 문명이 진화하는 과정과 닮았다면 예술하는 과학자 같나요?(웃음) 제 작업실은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곳이고, 실패하고 도전하는 장소라 말하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정말 식물이 넘치는 곳으로 가고 싶지만, 아직은 이 도시에서 해야 할 작업들도 많고요. 새로운 기계 출연하면 공장과 연구소로 다니느라 이 공간이 텅 비어 있을 수 있겠네요. 하지만 여전히 냉장고와 화분, 커피포트와 실내화에서 새로운 ‘생명현상’들이 벌어지고 있을 거예요. 오시기 전에 전화 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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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화정

사진 김영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