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2021년 11월호 칼럼 / 글 민용준
21세기 인류는 이제 예상 밖의 바이러스와 함께 공존하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위드 코로나 시대를 짚어보고 내다본다.
몇 번을 발음해도 어색하다. ‘위드 코로나’라니, 코로나19와 꽤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뭔가 한 번 같이 소주잔이라도 부딪히면서 잘해보자고 구호라도 외쳐야 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백신 접종 완료자가 전체 인구의 80%에 육박했지만 여전히 확진자수는 줄지 않고 중증 환자수도 늘어나며 희망하던 집단면역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진단이 나오는 상황이다. 아직은 코로나19와 함께하는 나날이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한 인상이다.
‘위드 코로나’와 함께 바뀔 세상을 예측하는 건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같은 일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위드 코로나 시작 3주 만에 위기설이 제기되는 상황 속에서 언제 또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만남이 제한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니까. 하지만 확실한 건 ‘위드아웃 코로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슬로건이 어찌됐건 우리 삶은 이제 어떤 식으로든 ‘위드 코로나’ 상황에 봉착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니까 바야흐로 위드 코로나 시대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정부 발표보다도 사람들이 먼저 위드 코로나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난 11월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 심리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소비자심리지수’가 전월보다 상승했고 세 달 연속 상승세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9월부터 11월까지 지속적으로 소비심리가 상승했다는 것이다. 위드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1월 이전부터 소비자들의 체감 경기가 거듭 상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주말이나 휴일에 유명 번화가에 나가면 사람으로 북적이는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코로나19 유행 이전 상황과 다르지 않아 보일 정도다.
불과 1년여 전인 2020년 11월부터 1월 사이 1천 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하며 이어진 3차 대유행 시기와 비교하면 온도차는 더욱 명확해진다. 3차 대유행보다도 더 많은 2천여 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 상황임에도 외출이나 만남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확연히 줄어든 인상이다. 물론 백신 접종 인구가 늘어난 것도 중요한 요인이겠지만 심리적인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를 억누르는 두려움도 만성이 된 영향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1일 사이, 국회보건위원회 전봉민 의원이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의뢰해 직장인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는 긴급 설문 결과에 따르면 위드 코로나에 찬성하는 응답자가 과반이 넘은 63.4%로 나타났다고 한다.
백신을 맞은 이들이 상당수 늘어난 만큼 면역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다시 예전 같은 일상을 회복하고 싶다는 바람이 어느 때보다 큰 시점이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무력화시킬 수 없는 바이러스를 상대로 마스크를 쓰며 버틴 2년여의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2020년 2월부터 유행 조짐이 보일 때만 해도 1년 안에 끝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참으면 될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제 2년 여가 돼 가는 시점에서 코로나19는 참아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바야흐로 포스트 코로나가 아닌 위드 코로나 시대다. 많은 이들이 전망한 것처럼 코로나 이후로 바뀐 것들로 인해 앞으로 더 많은 것이 바뀌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이 돌아오고 회복될 것 같기도 하다.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직장인들의 걱정도 상당했다. 감염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재택근무가 끝날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위드 코로나 시대의 가장 큰 변화는 재택근무로 인해 지각 출근의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된 직장인들의 일상이었다. 물론 집에서 일하며 과업에 시달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최소한 출근길에서 감내해야 하는 갖은 고생으로부터 시작했던 코로나19 유행 이전의 아침과 다른 새로운 아침을 경험한 이들에게 위드 코로나는 뜻밖의 걱정을 안겨줬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내년 1월부터 재택근무를 끝내고 사무실 복귀 계획을 밝힌 애플이 이를 2월로 연기했다고 한다. 사실상 내년 1월 계획도 지난 9월에 실시하려던 계획을 연기한 것이었다. 직원들의 반발이 예상보다 강했다. 심지어 당장 첫 달에는 주중 2일만 출근하고 3일은 재택근무를 하는 조건이었음에도 그랬다. 애플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내로라하는 IT 기업의 상황도 유사하다고 한다. 코로나19 유행 이후로 세상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은 바로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역설적이지만 코로나19 유행은 비대면으로도 가능한 것을 빠르게 설득했다. 서로 만나지 않아도, 함께 머무르지 않아도 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비대면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의 시행착오는 적지 않았지만 결국 터치패드 없는 핸드폰을 쓰던 세상을 그 누구도 떠올리지 않듯이 비대면을 경험하고 적응한 이들에게 대면을 위해 들여야 하는 노고란 생각 이상으로 기회비용이 큰일이 돼버렸다. 출근을 위해 바삐 움직여야 했던 아침이 보다 여유로워졌고, 직장 동료들의 기호에 맞출 필요 없이 자율적으로 점심 식사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딱히 원치 않았던 회식이 사라진 것에 만족하는 이들도 있다.
이렇듯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익숙해진 비대면 일상이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상당하다. 최근 페이스북이 메타라는 이름으로 회사명을 바꾸고 메타버스 사업을 비전으로 내건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심지어 메타버스에 가상 사무실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회사도 생겨나고 있다. 대중교통을 타거나 차를 운전해서 사무실로 직접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계정으로 로그인해서 자신을 대변하는 아바타로 가상 사무실에 출근해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다. 실제로 부동산 정보서비스 업체 직방은 지난 2월부터 메타폴리스라는 가상 사무실을 운영했고 기존에 사용하던 사무실을 정리한 바 있다. 메타버스에 사무실을 만들어 운영하는 실험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비대면 재택근무 인구가 늘어난 만큼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도 함께 늘어난 셈이고, 이는 곧 집 안에 머무는 시간에 투자하는 비용도 함께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코로나19 유행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판매량이 급등한 제품은 바로 TV였다.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집 안에서 가능한 엔터테인먼트를 강화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졌고 TV가 주된 역할을 한 셈이다. 게다가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스마트 TV 수요가 어느 때보다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유행과 사회적 거리두기는 그러한 소유욕을 부채질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동시에 지난 몇 년 사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LP판을 비롯한 실물 음반 역시 코로나19 유행이 이어진 지난 2년여 사이 크게 성장했다. 여전히 음원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코로나19 유행과 함께 집에서 음악을 듣는 이들이 다시 늘어나면서 실물 음반 판매량도 급증한 것이다. 이 역시 세계적인 현상인데 미국 레코드 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LP판 판매는 작년과 비교했을 때 두 배 가까이 급증했고, 점차 감소세였던 CD 판매량마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한편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4분기 들어 글로벌 TV 출하량이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곧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변되는 코로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사람들의 기대감을 대변하는 지표로 보인다. 집에 머무는 시간보다도 집에서 나갈 시간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이다. 위드 코로나 시행 이전부터 높아진 소비자심리지수를 보이는 국내 상황도 이에 들어맞는 결과나 다름없다. 그러니까 이젠 정부 정책과 무관하게 심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위드 코로나를 받아들인 상황이고, 어떤 면에서는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의 수가 어느 정도 확인이 된 셈이다.
물론 코로나19 유행의 추이가 어떻게 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상황이 악화돼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다시 실시한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다만 이제 한 가지는 확실해진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이 급변할 것이며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꼭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결국 변하는 것은 변하겠지만 여전한 것은 여전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1950년대에 이르러 대중을 사로잡은 TV로 인해 대두된 영화산업의 긴장이 팽배했지만 지금도 사람들은 극장에 간다. 비록 코로나19 유행과 함께 극장의 관객이 줄었지만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돌아올 것이다. 극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코로나 19도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 같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든, 위드 코로나 시대든, 결국 사람들은 하지 못했던 것을 할 것이다. 다시 하고 싶은 낙을 찾아갈 것이다. 세상이 변해도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글 민용준 칼럼니스트 / <무비스트> <엘르> <에스콰이어>에서 기자로 일하며 영화 및 대중문화,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칼럼을 쓰고, 저명인사를 인터뷰했다. 현재에는 프리랜스 영화 저널리스트이자 및 대중문화 칼럼니스트로서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며 방송, 강연, 모더레이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