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태극기 사진전
우리는 태극기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태극기가 언제부터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국기가 되었고 어떤 역사를 품고 있는지,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은 우리나라 역사를 함께한 태극기를 소개하고 태극기 만들기 체험을 통해 태극기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은 지난 11월 한 달 동안 <문화재 태극기 사진전>을 개최했다. 독립기념관과 협력하여 진행한 이번 전시는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에서 2일부터 21일까지 3주 간, 동탄복합문화센터에서 22일부터 28일까지 7일 간 열렸다. 우리나라에 있는 실물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데니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2호)부터 1919년 3·1운동 때 사용했던 태극기(남상락 태극기 등), 1950년 6·25전쟁 시 사용했던 태극기(유관종 부대원 태극기 등)까지 총 18점의 국가등록문화재 태극기를 소개하였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깃발이 처음 게양된 계기는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이며, 1882년 9월, 고종의 명령으로 박영효가 ‘태극’과 ‘4괘’가 있는 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使和記略』). 등록문화재 태극기는 ‘태극’과 ‘4괘’로 이루어져 있지만 각각 태극의 생김새가 다르고, 괘의 순서나 색도 다르다. 이렇게 다양한 태극기가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국기를 태극기로 정하면서 태극기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883년에 고종이 ‘태극’과 ‘4괘’로 된 도안을 우리나라 국기로 제정하여 공포하였으나 제작방법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고, 1942년 6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기통일양식」을 제정·공포하였으나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광복 이후, 1949년 대한민국 정부가 「국기제작법」을 확정하면서 국기의 형태가 법으로 정해졌다.
태극기의 형태는 달랐지만 나라를 지키고자 한 우리 선조들의 마음은 하나였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에게 외교권을 강탈당하자 ‘不遠復(불원복, 머지 않아 회복한다)’을 수놓은 태극기를 지녔던 의병 고광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당부하는 글귀를 적어 우리 민족에게 전달해주기를 부탁하며 신부 매우사(梅雨絲, 미우스 오그)에게 태극기를 건넨 김구, 태극기에 결의와 각오의 글을 적은 한국광복군과 6·25전쟁에 나선 학도병처럼 우리 민족은 태극기에 염원의 마음을 담기도 했다.
에디터 오송이(독립운동문화팀)
사진 독립운동문화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