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기록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12월, 한 해가 끝나가는 이 맘 때가 오면 ‘한 해 동안 내가 뭘 했지?’ 생각해보곤 한다. 그리고 달력을 넘겨보며 ‘이런 일이 있었지…. 아! 저런 일이 있었지….’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기억하고 싶은 일들을 기록해두는 것, 가장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다. 화성인들은 2021년을 어떻게 기록하고 싶을까?
올해 가장 기록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2021년은 마치 소설 같은 한 해였다. 밤잠 설치며 달려온 나의 학문 연구가 인정받아 3월부터 각종 상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4월에 갑작스런 코피로 시작된 약물 부작용이 몸의 큰 질병이 되어 중환자실과 일반실을 오갔다. 그리고 병원에서 심장이식이나 신장이식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6개월간 힘겨운 투병생활을 했다. 그러한 알 수 없는 난치성 심장 질환과 신장질환이 겹쳐 사경을 헤매고 마치 인생의 종착역이 가까운 것처럼 자포자기하고 싶은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먹고 자고 싸고 걷고 앉고 일어서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능력이나 소유, 인간관계조차 얼마나 무의미한지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다행히 대체의학대학 전공 교수라는 직업덕분에 스스로 철저히 관리하고, 먹고 생활하는 모든 것을 치료에 집중했다. 누구나 비슷한 일을 당할 수 있지만 마음의 자세는 다른 것이다. 통증으로 극심한 고통을 느낄 때마다 그리고 몸이 죽어가는 것을 느낄 때마다 아내가 건네는 사랑의 말과 용기를 주는 말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수없이 내 귓가에 “언제나 나는 당신을 사랑해.
그러니까 꼭 일어설 거야.”라고 말하던 아내의 목소리가 나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되었다.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고 기도해준 아내의 극진한 사랑이 나를 일으켜줬다. 병원에서도 놀라운 기적이라 말했다. 지금은 일상생활을 할 정도로 회복하고 아내의 애틋한 손길에 더욱 건강해지고 있다. 기쁜 일이던 슬픈 일이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 즐겁고 덜 슬플 것이다. 2021년 잊지 못할 귀한 사랑을 내게 보여준 아내의 진심 어린 마음에 깊은 감사와 한없는 사랑을 보낸다.
그림을 시작한지 8년 째인 올해, 공모전에서 우수상과 100만 원의 상금을 받고 수원시 영통구청 공모사업에서 첫 번째 초대 개인전을 열었다. 또 공모전에서 받은 상들이 매년 모여 추천 작가로도 결실을 맺고, 이마트 문화센터 강사로 초빙도 받았다. 곧 종로구 운현궁에서 두 번째 개인전도 기다리고 있다. 가족이 늘 1순위였던 내가 나를 1순위로 두는 건 시간여행 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였는데, 이제 현실이 되었다. 내가 잘하는 걸 찾아 헤매다 만난 그림. 그리고 내가 행복하니 더 좋아하고 응원해 주는 가족이 있어 더욱 뜻 깊은 한 해였다. 취미로 그림을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는 듯 큰 결실도 얻은2021년이 기억 속에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들이 올 한 해 중 절반은 넘은 것 같다. 그래서 학교생활도 재미없고 공부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졌다. 당연히 성적도 바닥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차츰 친구를 사귀게 되며 학교에 가기 싫은 마음이 사라져갔다. 친구와의 추억 만들기가 올해 기억에 남는 일 중 가장 큰 일이다. 노작공원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던 것, 남광장과 북광장을 다니며 몰랐던 곳들에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남은 시간들도 알차게 보내서 조금 더 공부를 열심히 하고, 또 늘 걱정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좀 놓이게 하면서 고3이 되기 전 시간을 잘 보내고 싶다. 또한 우리 예당고 친구들도 모두 파이팅이라고 전하고 싶다.
한 달 전 이직에 성공해 회사를 다니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취업이 쉽지 않았는데 취업 카페에서 후기를 보면 나만 빼고 다들 취업을 잘 하는 것 같았다. 몇 번의 자기소개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도 백신 2차를 맞고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에도 휴대폰으로 자기소개서를 수정하고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이러다가 진짜 아무것도 안하고 올해가 끝날 것만 같은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면접 제의가 왔다. ‘지역이 가까우면 좋을 텐데’ 하는 기대와 달리 처음 들어보는 도시, 동.탄. 이제 한 달을 일했지만 계속 내 안에서는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내가 정말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그리고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을까?’ 답을 내리진 못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20대를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10분 동안 버스를 타고 근처 동탄호수공원에 내려 한 바퀴 여유롭게 돌아봤다. 낙엽이 떨어지며 가을 냄새 나는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시작을 축하해!’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을 받으니 지금의 이 길이 곧 나의 인생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2021년 세 번의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첫 번째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12주간 도서관 지혜학교에서 들은 ‘명작으로 만나는 소요의 지혜’였다. 나를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 내가 좋아하고 생각하는 것들을 공유하고 발표하는 건 어려웠지만 설레고 즐거웠다. 두 번째는 화성시 마을 옛 이야기 창작 프로그램 ‘당신의 화성을 기록 합니다’ 공모와 연계한 수업이었다. 1인 1책 쓰기 수업을 통해 평범한 나의 삶과 함께 한 사회적 이슈들을 자전적으로 기록했다. 세번째는 송린이음터가 주관한 ‘마을 기록 활동가 수업’이었다. 사라져 갈 것들을 의미 있게 하는, 기록의 중요성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모든 수업을 마치고 두 살 터울의 동생과 엄마라는 이름표를 잠시 내려놓고 오래전 졸업했던 국민학교와 중학교 탐방 계획을 실행했다. 옛 동네의 길은 커져버린 몸만큼 작았다. 그 시절 동네 어귀에 풍기던 탄내인지 모를 익숙하고 희미한 냄새가 났다. 코르덴 소재의 고리바지를 입고 넓은 이마를 한껏 올려 묶은 아이가 행진곡에 맞춰 등교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걱정하지 마. 잘 될 거야. 넌 그냥 그대로 충분히 아름다워.’ 바스락 소리를 내며 낙엽이 쌓인 학교 놀이터 구석을 걸었다.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어줘서 고마웠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나니 아이가 보고 싶었다. 단 하루의 외박인데 유난이다. 돌쟁이 엄마인 동생은 걱정이 많았다. 나의 10살 난 아이는 아빠와 잠들었다. 아이는 엄마, 아빠의 향한 애정 어린 관심을 때론 간섭으로 생각할 만큼 성장했다. 층층이 쌓여온 얇은 인생의 꺼풀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실패에서 겸손을 배우고 격려에서 애정을 알아갔다. 눈물 자국으로 변질된 면도 있었고 분노로 검게 변한 곳도 있었다. 매일이 얇은 습자지 같아서 어제도 내일도 되풀이된다고 생각해 무기력했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고 생각했던 시절을 일기로 남긴다. 기록의 기술은 빠르게 발전한다. 온오프라인을 오가는, 잡히지 않는 무언가의 무게를 느낀다. 연필을 깎을 때 나는 나무 냄새를 좋아한다. 흑연을 섬세하게 다듬는다. 종이 위로 춤추며 긁어내는 사각거림이 좋다. 그렇게 그리운 마음을 기록한다.
선물 같은 아가가 태어난 지 어느덧 한 해가 다 되어간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아기라 너무나 감사하고 소중하지만, 한편으론 힘든 세상에서 살아갈 아기에게 미안함도 들었던 한 해였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기쁨을 준 소중한 아기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던 2021년이다. 많이 부족한 부모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하고 사랑한다고, 아기에게 전하고 싶다.
웹툰 작가 윤태호는
버티는 것까지가 재능이라고,
작가 이외수는
존버를 외쳐대며 V자를 연출하고
사직서를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남편에게
무조건 버티는 게
장땡이라며 등을 떠민다
악바리가 되지 못해
바닥에 앉아 울고 있는 내게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뻗어 구부린 채
기어가면서도 살아가는 벼랑 끝의 나무가
참고 견뎌내고 당해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묵묵히 걸어가는 일이
잘 살아가는 것이라며
나의 등을 토닥여준다
2021년 1월 1일을 맞이할 때 코로나19 종식을 기원하는 희망의 나뭇가지를 붙들었다. 하지만 12월을 맞이하면서도 코로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동네를 걸으며 과연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던 2021년이었다. 지금도 남편은 힘들다며 사직서를 가지고 다니고 아이들도 사는 게 왜 이리 힘드냐고 내게 묻는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수목한계선에 살아가는 나무가 나의 등을 토닥여준 것처럼 남편과 아이와 친구와 이웃들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여주길 바랄 뿐이다. 잘 쓴 시는 아니지만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시 한 편이 가장 기록하고 싶은 일이다.
나는 올해 결혼을 했다. 우리의 웨딩 스냅사진을 내 가까운 사람들이 직접 촬영해주었다.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운 촬영이었고 늘 사진을 볼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2022년에는 나의 절친한 친구가 결혼을 한다. 이번엔 내가 직접 웨딩 촬영을 해주기로 했다. ‘사진’이라는 매개체로 서로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기록해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뜻 깊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