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2022년 3월호 칼럼 / 글 김도헌
음악을 말과 글로 풀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좋은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이 듣도록 알리고, 유행하는 노래의 의미를 짚어 다양한 감상을 돕고자 하며, 가끔은 평가를 섞어 활발한 토의를 유도하기도 한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맡곤 한다. 하루 종일 책 읽고 음악만 듣던 학창 시절 나 혼자만 이 좋은 노래를 듣기 아깝다는 생각에 혼자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써온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됐다는 ‘덕업일치’의 사례가 됐다.
‘덕업일치’에는 장단점이 있다. 일단 자존감이 높아졌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듣던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일이 만족스럽다. 좁은 방 한가득 쌓아놓은 CD를 보며 한숨을 쉬던 어머니께서는 이제 신문이나 라디오 방송에 나온 내 모습을 캡처해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 사진에 올려두곤 하신다. 허구한 날 이어폰 끼고 음악 이야기만 하던 학창 시절 모습을 기억하는 친구들이 응원과 격려를 보내줄 때는 뿌듯한 기분이다. 물론 나름의 고충도 있다. 하루 종일 음악을 듣고 그 의미를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음악 감상이 휴식이나 정신 집중의 수단이 되지 않은 지는 이미 오래됐다. 일상과 업무의 구분이 흐릿해지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굳이 궁금하지 않은 음악 이야기를 꺼내 떠들곤 한다. 적당한 설명과 ‘TMI(Too Much Information, 너무 과한 정보)’ 사이서 갈팡질팡할 때가 많다.
다행히도 요즘 음악 시장은 투 머치한 정보와 해석을 많이 필요로 한다. 음악 감상의 방법이 다양해진 만큼 실시간 인기 차트에 오른 노래들의 인기 비결이 모두 다르다. 예전처럼 모두가 아는 국민가요의 위상을 가진 곡은 줄었지만, 각자 확보한 지지층의 힘으로 집단의 취향을 대중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이 자주 보인다. 이를 해석하고 전달하는 역할이 나의 몫이다.
현재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의 실시간 차트에서 팝 아티스트로 이름을 올린 게일(GAYLE)의 ‘abcdefu’가 왜 떠올랐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유튜브에서 백만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한 가사 해석 크리에이터들의 생태계를 알아야 한다. 걸그룹 아이브의 ‘일레븐’을 듣기에 앞서 이 그룹에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48’에 참여해 인기 프로젝트 그룹 아이즈원으로 활동했던 안유진, 장원영이 소속되어 있다는 점을 알면 인기의 비결을 가늠해볼 수 있다. 탑현의 ‘호랑수월가’는 가수와 노래 모두 낯설지만 이미 지난해부터 라이트노벨 ‘나와 호랑이님’의 OST로 소셜 미디어 상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곡이었다.
이렇게 음악을 해석하다 보면 최근 음악 소비의 흐름과 인기 장르를 파악하고 향후 전망을 내놓을 수 있게 된다. 세계 시장으로 무섭게 영역을 넓혀가는 케이팝에서 이런 접근이 많이 요구된다. 거대 기획사가 심혈을 기울여 내놓는 아이돌 그룹의 음악은 이제 듣는 것을 넘어 보고, 체험하고, 재생산하는 멀티미디어 콘텐츠에 가깝다. 지난해를 휩쓴 SM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에스파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내세우는 세계관 광야(KWANGYA)의 줄거리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JYP엔터테인먼트의 새 걸그룹 엔믹스(NMIXX)가 왜 한 곡에 이질적인 두 장르를 섞어 제시했는지, 방탄소년단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 하이브가 왜 웹툰 사업에 진출하는지를 이해하려면 각 분야를 오래 지켜봐 왔고 이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큐레이터의 존재가 절실해진다. ‘TMI’가 필요한 순간이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전달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나의 소셜 미디어 타임라인에는 근사하고 세련된 OTT 드라마 후기가 올라오지만 현재 최고의 인기 드라마는 ‘신사와 아가씨’고, 많은 사람들이 임영웅이 부른 OST ‘사랑은 늘 도망가’에 위안을 받는다. 휘황찬란한 케이팝 그룹의 도전과 실험에도 음원 차트를 주도하는 그룹은 누구보다 통속적이고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부르는 스테이씨와 그들의 노래 ‘RUN2U’다. 음악의 흐름을 먼저 읽는다는 음악 평론가가 외려 현재 대중이 즐겨 듣고 따라 부르는 노래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대중음악평론가’라는 직함을 달고 일하는 나에게는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절대다수의 취향에 휩쓸리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오늘날 ‘누구에게나 좋은 음악’은 없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사실은 이렇게 다양한 주장과 선호 속에도 만인의 사랑을 받는 선율이 분명 존재하며, 이 노래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는 거창한 세계관이나 배경 지식, 부연 설명은 필요 없다. 모르고 들어도, 알고 들어도, 음악은 언제 어디서나 때에 맞는 감정을 자극하며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고 살아갈 힘을 불어넣는다. 음악의 위대함이다. 조금이라도 봉사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글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2013년부터 음악 웹진 IZM에서 에디터로 활동했고 2019년부터 2년 동안 편집장을 역임했다. 뉴스레터 제너레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