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해 만나는 예술의 의미

뉴스레터 2022년 4월호 칼럼 / 글 박동수

TV 뉴스나 길거리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를 볼 때 화면 속에 내가 담기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종종 해본다. 이건 나만의 상상은 아닐 것이다. 영화의 카메라는 그 앞에 놓인 모든 것을 담아낸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이렇게 쓰고 있다. “현대의 인간은 누구나 영화화되어 화면에 나올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1930년대에 쓰인 문장이지만 모든 곳에 카메라가 있는 지금의 상황에 더욱 알맞은 말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진행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있었던 큰 해프닝에 묻혀버린 수상작이 한편 있다.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의 수상작 <축제의 여름>이다. 1969년 뉴욕 할렘에서 진행된 할렘 문화축제를 담은 영상과 함께 당시 무대에 섰던 뮤지션과 관객의 인터뷰가 영화를 채우고 있다. 여기서 무대에 선 기라성 같은 뮤지션이 화면에 등장하는 것만큼이나 관객들의 모습이 화면에 등장한다. “… 혹은 중계될 수 없는 혁명”이라는 부제가 알려주듯, 1969년의 축제는 기록되긴 했으나 제대로 방영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영화 마지막 장면의 한 인터뷰이는 이렇게 말한다. “때론 그게 진짜였는지도 확신이 안 서요. 제 기억이 진짜였다고 재차 확인받은 기분이에요. 고마워요!”

 

 

할렘 문화축제는 단순한 음악 축제가 아니었다. “블랙 우드스톡”이라는 별명이 알려주듯, 빈곤한 생활을 이어가던 뉴욕 할렘의 흑인과 이민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현장이었으며, 지역공동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종종 예술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단단한 밧줄 같은 역할을 한다. 19살의 스티비 원더가 노래를 부르자, 할렘이라는 이름의 지역 공동체는 하나가 된다. <축제의 여름>은 예술을 통해 묶인 공동체를 다시 한번 소환한다.

 

영화는 흔히 제7의 예술이라 불린다. 이 말은 곧 영화가 자신보다 긴 역사를 지닌 예술, 건축/회화/음악 등의 앞선 예술을 담아내는 그릇이기도 함을 의미한다. 영화는 예술을 담아내고, 예술가를 담아내고,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을 담아낸다. 영화는 앞선 예술을 관객 공동체에게 소개하는 교육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예술로서 관객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낸다. <러빙 빈센트>가 고흐의 명화들을 소개하고, <보헤미안 랩소디>가 관객들을 함께 노래하게 하는 것처럼.

 

 

 

“누구나 영화에 나올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말은 역으로 영화를 통해 사람들의 공동체가 가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 아녜스 바르다와 사진작가 JR의 프로젝트 <아녜스가 사랑한 얼굴들>은 두 사람이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의 초상사진을 거대하게 인화하여 건물 등에 붙이는 작업을 담아낸다. 영화 속 사람들은 누구나 카메라에 담길 수 있고, 카메라는 그들을 한데 묶어 담아낸다. 영화에 담긴 사람들의 초상에는 기억과 문화와 예술이 담겨 있다. 두 예술가가 만들어낸 영화는 사람들을 한데 묶어 공동체의 초상을 제시한다.

 

 

누군가는 예술을 쓸모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누군가는 영화는 시간만 죽이는 오락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것, 문화라는 것은 무엇보다 사람들을 한데 묶어준다. 영화는 불특정다수가 영화관에 모여 함께 관람하는 예술이다. 영화는 관객을 일시적인 공동체로 만들어주는 매개임과 동시에, 영화 속에 등장한 공동체를 목격하며 공동체를 재확인하게끔 해준다. <축제의 여름>을 보며,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보며, 또 다른 영화들을 보며, 예술이 공동체를 묶어 주었고 그것을 목격하는 과정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들을 만날 수 있을까? 박배일 감독의 <라스트 씬>은 몇 년 전 문을 닫은 부산의 국도예술관을 비롯해 영업을 종료한, 혹은 영업종료를 앞둔 오래된 영화관을 찾아간다. 영화관은 문을 닫지만, 그곳에서 함께 영화를 보며 형성된 공동체는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지난 2월 개봉한 <미싱타는 여자들>은 70년대 청계상가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당시를 회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말미에 이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는 70년대와 지금을 이으며, 장소가 사라졌을지언정 기억과 사람은 남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임흥순 작가의 <좋은 빛, 좋은 공기>는 서로 다른 역사적 아픔을 지닌 두 도시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람들이 각자의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을 담아낸다.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의 건축물을 담아낸 <이타미 준의 바다>는 그의 건축물이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경험으로 남았는지 알려준다.

 

물리적인 만남이 제한된 전염병의 시대에 만남을 전제로 하는 많은 공동체가 존폐 위기에 놓였다.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해져야 할 공동체는 다양한 구별을 놓고 분열하고 있다. 다양한 예술을 담아낸 영화는 자신을 경유해 함께 예술을 향유하고, 문화를 구성하고, 서로를 환대할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누구나 영화에 나올 수 있는 만큼, 누구나 영화 속에서 자신과 같은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구나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것처럼, 누구나 그 예술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영화가 담아낸 다양한 예술들, 예술적 활동들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글  박동수

영화평론가. 제3회 독립영화비평상을 수상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다양한 웹진과 독립잡지에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으며, 웹진 ACT! 편집위원이자, 팟캐스트 진행자이고, 영화제 노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