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오늘의 소중함을 일깨운 수련의 빛

‘빛은 곧 색채’라고 말한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는 지베르니에 정착해 정원을 가꾸며 수련 연작으로 대성공을 거둔다. 아름답고 한적하지만 그다지 특별한 매력을 찾기는 어려웠던 지베르니를 최고의 여행지로 만들어준 모네의 비결은 ‘그저 이 마을에서 오래오래 살며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지베르니를 떠나는 것은 마치 심장을 두고 떠나는 것과 같다고 한 모네. 그는 예술과 일상이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는 아티스트의 이상을 실현한 작가다.

모네의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

그때는 몰랐다. 시골여행의 낭만을. 파리, 런던, 뉴욕 등 커다랗고 유명한 도시만을 찾아다닐 때는 지베르니처럼 작은 마을을 여행하는 기쁨을 몰랐던 것이다. 내게 작은 고장의 기적같은 아름다움을 알려준 첫 번째 장소는 바로 모네의 안식처 지베르니였다. 고작 인구 300명밖에 되지 않았던 작은 마을을 매년 관광객 300만 명이 넘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든 비결, 그것은 바로 ‘모네가 이 마을에 살았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지베르니에 여전히 건재하는 모네의 정원이야말로 전세계의 모네 팬들이 언젠가는 꼭 가고 싶어하는 예술의 성지가 되었다. 지베르니에 모네가 살지 않았더라면 이 마을은 계속 평범한 시골마을이었을 것이다. 아름답고 한적하지만 그다지 특별한 매력을 찾기는 어려웠던 지베르니를 최고의 여행지로 만들어준 모네의 비결은 ‘그저 이 마을에서 오래오래 살며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평생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헤매며 온갖 도시와 바다, 숲과 들판을 헤매던 모네는 지베르니에서 마침내 영원한 안식처를 찾았다. 젊었을 때는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한 화가였던 모네는 가정과 일 무엇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따스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하지만 스케치 여행을 하다 보면 가족과 헤어져있을 수밖에 없었고, 온갖 무거운 화구와 짐을 끌고 머나먼 길을 다니는 불안한 삶을 끝내고 싶었다. 지베르니는 모네에게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에 늘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물론 처음부터 지베르니가 모범답안처럼 완성되어 존재하던 것은 아니었다.

365일 꽃이 지지 않는 살아있는 유토피아

모네는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예술가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을 현실 속에 존재하는 유토피아로 만들기 위해 분투했다. 모네는 평범한 시골마을 지베르니의 낡은 집을 사서 그곳을 자신만의 독창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천국으로 만들어냈다. 식구들 모두가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커다란 이층집을 개조했고, 화실과 부엌을 특히 널따랗게 만들어 가정의 화목과 예술가로서의 노동을 모두 중시하는 이상적인 인테리어를 실험했다.
지베르니 모네 하우스의 핵심은 모네의 정원이었다. ‘물의 정원’과 ‘꽃의 정원’으로 나누어진 두 개의 거대한 공간은 모네의 숙원사업, 즉 365일 꽃이 지지 않는 살아있는 유토피아였다. 모네의 영원한 테마가된 수련 연작도 바로 이 지베르니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그려진다. 놀라운 것은 수련을 모네가 직접 심고 가꾸었다는 점이다. 부지가 워낙 넓어 무려 6명의 정원사를 고용했지만, 모네 또한 열심히 정원을 함께 가꾸었다. 모네는 ‘내가 잘하는 일은 오직 그림 그리기와 정원 가꾸기 밖에 없다’고 말했을 정도로 화가로서의 삶과 정원가로서의 삶을 사랑했다. 다른 일에는 거의 시간을 쓰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과 자연이야말로 위대한 예술의 화두

이제 모네는 아름다운 풍경을 찾기 위해 머나먼 곳을 떠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에 그가 꿈꾸는 모든 것을 완벽히 재현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집과 정원을 일종의 거대한 무대 세트로 삼아 매일매일 변화무쌍한 연극을 연출하는 감독과 같았다. 그 무대 위에는 그의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그가 매일 애지중지 키우는 꽃과 나무들이 소담스러운 일상의 축제를 벌였다. 모네의 그림을 보는 일이 즐거운 것은 그가 일상의 아주 자잘한 기쁨을 거대한 기적처럼 눈부시게 그려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정원에서 차를 마시거나 책을 보는 아내의 모습, 꽃의 정원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 마치 필생의 소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일매일 꽃을 피워내는 수련의 장관은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일상과 자연이야말로 위대한 예술의 화두임을 상기시켜준다. 모네가 묘사하는 것은 단지 일상의 평화로움이 아니라 일상의 자잘한 디테일 속에 숨은 눈부신 생의 아름다움처럼 보인다. 그 속에서 양산을 쓴 아내는 신화 속 여신만큼이나 찬란하고 신성하며, 뛰노는 아이들은 신화 속 큐피드 못지 않게 사랑스럽다. 일상의 작은 디테일에서 찰나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모네는 생을 사랑하는 따사로운 눈길과 평생 혼신의 힘을 다한 화가의 붓질로 매일매일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모네에게 수련은 디테일의 보물창고

모네의 정원은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방의 정원이 아니라 자연을 자신의 기획에 따라 한껏 가공한 인공정원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든 꽃이 피게 하기 위해 모네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1899년 이후부터는 특히 물의 정원에 있는 수련을 집중적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그저 관상용으로 심었던 수련이 말년에는 모네에게 필생의 화두가 된다. 모네는 점점 시력이 나빠졌는데 하루종일 따가운 태양광선을 맞으며 흔들리는 배 위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업 습관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자신의 작업 습관이 눈 건강을 해치는 것을 알았지만, 모네는 한 번 붙든 예술의 화두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하루종일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바꾸는 수련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 마침내 ‘오랑주리미술관’ 등에 기증할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에게 일종의 심혈을 기울인 자서전 같은 작업이었다. 수련이야말로 그동안 온갖 파란만장한 인생의 역경을 거쳐 마침내 도달한 ‘디테일의 보물창고’였다. 모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네의 수련 연작이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오랑주리미술관을 ‘인상주의의 시스티나성당’이라고 부를 정도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시스티나 성당의 영원한 주인공이듯이 모네의 수련 연작은 오랑주리미술관을 지켜주며 전 세계인을 맞이하는 모네의 뜨거운 분신이다.

자연은 영원한 영감의 원천

모네가 자연으로부터 얻은 풍요로움이야말로 영원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색채는 온종일 모네를 사로잡았다. 색채는 그의 강박이며 기쁨이자 그를 끝없이 고문하는 고통이기도 했다. 그는 더 정확히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색채를 구성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백내장 증상이 심각해져 이상 그림을 예전처럼 완벽하게 그릴 수 없게 되었을 때조차도 그는 붓을 놓지 않으려 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러 야외로 나간다면 당신의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는 잊으라고 조언했다. 그것이 나무든 집이든 들판이든 무엇이든, 기존의 관념 따위는 잊고,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려보라고 조언했다. 그것이 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분홍색 사각형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바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파란색 줄무늬라고 생각하는 것이 모네의 방식이었다. 꽃이라는 관념과 바다라는 관념에 빠져들지 않고 오직 눈앞에서 반짝이는 바로 이 순간의 색채와 형태를 잡아내는 것이 모네의 기획이었기 때문이다.

지베르니를 떠나는 건 심장을 두고 떠나는 것

모네는 수련을 통해 명실상부 최고의 화가로 발돋움했다. 그의 화풍을 조금이라도 엿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화가들이 지베르니로 몰려왔고, 모네는 특별히 제자를 받지 않았지만 자기들끼리 마을에 모여 살며 일종의 모네 학파를 만들었다. 그중에는 모네의 딸과 결혼한 사람도 있었다.
지베르니에 정착한 뒤 모네는 ‘성격이 온화해졌다’는 칭찬을 듣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과도한 노동과 경제적 불안 속에서 살았던 모네는 스케치 여행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파리의 유명한 화상들에게 그림을 팔아야 한다는 압박감도 느껴왔다.
하지만 지베르니에 정착한 뒤 수련 연작이 대성공을 거두기 시작하면서 모네는 경제적 곤란에서 벗어났고, 세계적인 거장으로 발돋움했으며 살아있을 때 화려한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화가가 되었다. 고흐도 고갱도 마네도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내 작품은 대중은 물론 평론가나 화가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고립감 속에서 세상을 떠난 것에 비해, 모네는 마침내 대중과 평단 모두에서 환영받았고, 유럽은 물론 미국과 일본 미술시장까지 석권할 정도로 크게 성공했다. 그 모든 행복의 베이스캠프는 바로 지베르니의 정원이었다. 모네는 전시회 때문에 잠시 지베르니를 떠날 때마다 아쉬워했다고 한다. 지베르니 전체를 들고 다닐 수 는 없었으니까. 지베르니를 떠나는 것은 마치 자신의 심장을 두고 떠나는 것처럼 허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모네를 통해 나는 매일 영감을 얻는다. 바로 예술과 일상이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는 아티스트의 이상을 실현한 그의 놀라운 창조성과 불굴의 인내심이야말로 내가 영감을 얻는 ‘예술의 오아시스’다. 바로 이곳 지베르니에서 실현한 것이다.

정여울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온도를 찾다≫ ≪끝까지 쓰는 용기≫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 30여 권의 인문·심리·여행 책을 출간했다.

에디터 정여울

포토그래퍼 이승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