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감사랑PD
여름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 6월의 어느 수요일 아침. 양감면행정복지센터 2층 세미나실에 한바탕 웃음소리가 들린다. “자막을 쭉 드래그해서 왼쪽 위로 옮기세요”, “진즉 배운 것을 또 까먹었네(웃음)” 예순에서 일흔 남짓한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능숙하게 다루는 손짓은 여느 젊은 세대에 못지않다.
사진과 영상을 살펴보며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이어가는 모습은 전문가의 진지함,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서로 얼굴과 목소리는 달라도 공들여 영상을 이으며 집중하는 모습은 한결같다.
설은경 강사(이하 설) ‘마을PD’는 마을주민이 영상 교육을 익히면서 마을 방송, 영상 콘텐츠를 스스로 기획하고 제작, 유통할 수 있게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마을주민끼리 떨어져 있어 멀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거리를, 마을PD들이 만든 곳곳의 마을 이야기들로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동탄에 사는 저의 눈에는 남부 지역의 모든 것들이 신비롭고 보물 같아요. 그래서 “이것 좀 봐봐!”라고 알려주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명자 (이하 한) 작년에 주민자치회 활동 중 ‘마을PD 양성교육’을 알게 됐는데, 처음에는 영상 촬영을 공부하는 거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횟수가 거듭되면서 ‘내가 사는 양감면을 제대로 알리자’라는 꿈이 생겼지요. 사실 양감면은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을이거든요. 그런 양감면의 숨은 명소, 매력적인 장소를 화성시민에게, 나아가 전국에 널리 알리고 싶어요.
송홍석(이하 송) 양감면은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토박이 주민이 많이 살아요. 그러나 넓이에 비해 인구가 많지 않아 주민끼리 소통하기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죠. 그래서 영상을 통해 우리 마을의 소식을 주민들에게 전하고 다른 마을에도 알려주자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장동미(이하 장) 저는 평소에 사진에 찍히는 것보다 찍는 것을 참 좋아해요. 작년 이맘때 그걸 아시는 한명자PD님이 양감마을PD에 동참하면 어떻겠냐는 권유에 참여하게 됐어요.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 마을의 산과 물, 나무 등을 잘 기록해두어 후대에 전해질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다나까 가요꼬(이하 다) 제가 남편을 따라 양감면에 온 것은 1997년이었는데, 벌써 25년이 됐네요(웃음). 처음 양감마을PD를 알게 된 것은 관심 분야였던 영상 편집을 배울 수 있다고 해서였어요. 덕분에 뜻이 맞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마을의 일에 함께하게 되어 무척 즐거워요.
한 다들 농사일을 하면서 영상 제작을 배운다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오늘 배운 것도 그 다음 시간이 되면 까먹는 게 다반사라 강사님한테 미안한 마음이 컸어요. 그래도 친절하고 꼼꼼한 강사님 덕분에 실력이 점점 향상되어 뿌듯해하기도 했죠.
장 맞아요. 강사님이 “기억나시죠?”라고 말하면 우린 늘 “배운 적 없어~”라고 대답하는데, 속상할 법도 하련만 항상 웃으며 알려주는 강사님 덕분에 부담없이 수업을 할 수 있었어요.
송 올해 화성시미디어센터 안내 책자에 우리가 찍은 사진이 3장이나 실렸더라고요. 열심히 수업하는 모습이 실려 뿌듯했습니다.
다 그러고보니 그 뒤로 수업할 때 예쁘고 바르게 앉으려고 신경을 쓰게 되더라고요. 회의를 할 때는 또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몰라요!
장 양감사랑PD 모임에 나오는 날은 수삼일 전부터 기다려질 만큼 너무 흥미로워요. TV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것이 내가 배운 것과 연결되니까 보람도 느끼고요. 예전에는 그냥 멋있게만 느껴지던 게 손안에서 만들어지니 몇 달 사이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다 한창 바쁘다가도 일순간에 한가해지는 것이 농사잖아요. 농사에서 잠깐 짬을 내어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영상 제작이란 공통된 관심사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에요.
송 저는 양감면 25개 마을을 3개월 동안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촬영했어요. 점점 공장이 많아지고 도시화가 진행되는 와중인데, 지금부터라도 기록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에게 마을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역 현안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초 자료를 만들고 있어요. 농번기이지만 틈이 나는 대로 돌아다니며 마을PD의 본분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 일단 초보 단계에서 우리 손주들 사진으로 영상을 많이 만들어 봤는데 가족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남편도 적극적으로 응원해주고 있고요. 요즘 일과가 밤늦도록 연습에 연습을 반복하는 거거든요. 이제 조금은 영상 편집에 자신감이 붙었어요. 얼마 전 유튜브에 양감사랑PD 채널을 열었는데, 곧 주민자치회의에서 행사가 있을 때 우리가 영상을 제작해 업로드할 계획이에요.
한 1년이 정말 쏜살처럼 지나간 듯싶어요. 많이 배웠지만 알아야 할 기술이 더 많아 조바심이 나요. 키네마스터라는 앱을 통해 영상을 편집하는데 좀 더 고급 편집 기능을 배우고 싶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제작하고 싶어요. 요즘 TV를 보더라도 내용은 안 보고 ‘어떻게 영상을 만들었을까’, ‘어떻게 편집을 했을까’, ‘어떻게 자막을 넣었을까’하는 것만 봐요. 과정은 끝나지만 우리만이라도 자주 모여 활동이 끊이지 않고 지속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장 좀 더 배우고 싶어요. 과정이 끝나더라도 다시 뭉쳐서 많이 익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요. 무엇보다 시간적인 지원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송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교육 기간을 더 길게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전문가까지는 어렵더라도 준 전문가는 될 수 있어야 의도하는 바를 영상화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듯합니다.
설 가랑비에 옷 젖듯 마을PD님들에게 스며든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농사지은 사과·무·배추 등 오며 가며 챙겨주신 그 마음이 참 감사해요. 차가 밀리면 2시간 걸리는 거리긴 하지만 힘들지 않은 것은 마을PD님들이 주신 ‘정’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설 묻고 또 물으면서 배우고, 찍고 또 찍은 촬영본들. 고치고 또 고치는 편집과정을 거쳐 나온 한 편의 영상을 보면 단순한 1분 영상이 아닙니다. 마을PD님의 수많은 고민과 노력의 흔적이 보이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평가해달라고 조르셔서 수정할 부분을 알려 드리긴 하지만, 서툴러 보여도 그 자체가 진짜 마을미디어가 아닌가 싶어요. 완성된 마을 영상들, 그것을 보며 뿌듯해하는 모습, 아쉬워하는 모습, 즐거워하는 모습…. 이 모든 과정과 결과물이 감동이라고 생각해요.
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마을주민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 보여주고 싶은 것들, 특별하지 않아도 우리 마을의 소소한 것을 담아내는 즐거운 활동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마을주민들과 소통하고, 마을과 마을이 소통하는, 그래서 점점 따뜻한 정이 오고 가는 마을을 만드는 멋지고 의미 있는 활동이 마을PD라고 말해드리고 싶어요.
한 마을PD는 ‘방송국’이다!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고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마을주민에게 우리 마을 소식을 전하는 보람된 일이라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마을을 홍보할 수 있죠. 어떤가요, 마을PD가 되어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글 이종철
사진 최항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