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무대에 부는 착한 연대의 바람, 배리어 프리

뉴스레터 2022년 7월호 칼럼 / 글 이숙정

공연 무대에 부는 착한 연대의 바람, 배리어 프리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한 두 배우가 큰 화제를 몰고 왔다. 첫 번째 화제의 주인공은 농인 배우 이소별이다. 드라마에서 청각 장애가 있는 별이로 등장하는 이 배우는 실제 농인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를 놀라게 한 배우는 해녀 1년 차 영옥(배우 한지민)의 언니 ‘영희’다. 영희는 다운증후군 환자였다. 시청자가 놀란 것은 장애우 언니가 있다는 설정이 아니라 진짜 다운증후군 영희(다운증후군 배우 정은혜)의 등장 때문이었다.

 

영희를 보고 놀란 것은 영옥의 애인 정준도 마찬가지다. 정준의 반응은 우리의 현실 반응과 같았다. 정준은 말했다. 자신이 놀란 것을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왜냐하면 다운아를 본 적이 없고 또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영옥은 영희를 보고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은 사람들이 다운아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을 집에 두고 일을 해야 하거나 시설에 보내야만 한다고. 이 드라마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왜곡 없이 보여 주며 큰 감동을 안겼다.

 

 

배리어 프리가 뭐길래!

 

지난 3월 국립극장 소극장 판에 관객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관객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소리 없는 움직임으로 조용히 들어선 관객들은 손으로 무언가 신호를 보내며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그들이 농인들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공연을 십 년 넘게 보았어도 그렇게 가까이서 함께 공연을 본 것은 처음이지 싶다. 그 공연은 청인 배우와 농인 배우가 함께 등장하는 연극이었고 관객석 역시 청인과 농인 반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동안 공연장에 위치한 장애인 석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장애우들이 공연을 보는 일도 흔치 않았다. 지금처럼 화면 해설이나 음성해설 같은 서비스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랬다. 장애인석이 있지만 장애인들을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것은 그들이 공연장으로 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장애인들이 연극 한 편, 음악회 한 번 관람하려면 너무나 많은 장벽을 넘어야 한다.

 

요즘은 ‘배리어 프리’란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배리어 프리 영화, 배리어 프리 공연, 배리어 프리 전시 등. 원래 건축 용어에서 나온 배리어 프리(barrier-free)는 barrier와 free의 합성어다. 직역하면 장벽(barrier)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자는 의미가 된다. 오늘날 ‘배리어 프리’는 장애인 및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게 물리적인 장애물, 심리적인 벽 등을 제거하자는 운동과 정책을 뜻한다.

 

우리가 가장 가깝게 접하는 ‘배리어 프리’는 방송에서다. 특정 시간대 뉴스 하단에 수어 통역사가 뉴스를 통역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거다. 놀랍게도 지상파 방송 3사가 저녁 종합 뉴스 시간에 수어 통역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을 2020년 9월부터였다. 2020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코로나 상황 브리핑 당시 정은경 본부장과 나란히 서서 수어 통역을 하는 수어 통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이렇게 불과 1~2년 사이 배리어 프리는 우리 일상으로 조금씩 들어와 있었다.

 

 

장벽을 허물기 시작한 공연계

 

공연계에 부는 배리어 프리는 다른 분야보다 더 적극적이고 광범위하다. 공연에서 배리어 프리는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개방형 자막이 주로 사용된다. 무대 양옆에 설치된 모니터나 스크린을 통해 배우의 대사, 효과음, 배경음악 등을 자막으로 나타낸다. 좀 더 직접적으로 수어 통역사가 무대 한쪽에 등장해 통역을 해주기도 한다. 음성해설을 지원하는 공연의 경우는 공연장에서 음성 해설기를 제공한다. 지정된 특정 좌석에 화면 해설 수신기가 배치되는 경우도 있다. 모두 공연의 특성과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특수성을 고려해 제공된다.

 

물론 모든 공연에서 배리어 프리를 적용하고 있지는 않다. 아직 그만한 시설과 인력을 보유한 공연장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일부 공연 회차에 배리어 프리 서비스가 제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전 회차 배리어 프리를 제공하는 공연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배리어 프리로 모니터나 스크린을 통해 대사, 효과음 등을 자막으로 보여주는 것은 비단 농인들에게만 필요한 서비스가 아니다. 시력이나 청력이 좋지 않거나 공연장 특성으로 대사가 정확하게 들리지 않는 경우도 이 서비스는 도움이 된다. 연극 대사를 글로 확인함으로써 내용을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울 때도 많다. 배우들의 연기를 자막과 함께 봄으로써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어떤 작품의 경우 이 자막이 또 다른 연극적 효과를 주기도 한다.

 

2021년 연극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에서는 배리어 프리의 방식으로 개방형 음성해설, 그림자 수어 통역을 공연에 도입했다. 음성해설은 개방형으로 이루어져 해당 회차를 관람하는 비장애인 관객과 장애인 관객이 함께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수어 통역은 그림자 통역(Shadow Interpreting) 기법을 시도해 수어 통역사가 배우의 동선을 쫓으면서 통역을 진행했다. 수어 통역사도 무대 위 배우가 된 셈이다. 이처럼 무대 한구석에 배치한 수어 통역사에게 또 다른 극의 해설자 역할을 부여하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국립극단은 좀 더 적극적인 시도를 했다.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를 무대에 올려 그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연극을 만들었다. 2022년 연극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시계로, 엘사 아님>에서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는 자신들의 언어도 대화를 한다. 두 배우는 일단 부딪쳐보고 눈짓과 표정, 온몸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백문 백답, 밸런스 게임, 얼굴 그리기, 배드민턴 치기, 빙고, 릴스 찍기 등을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연극이 되는 형식이다.

 

이 작품은 수어 통역사가 있지만 청인 관객을 위한 자막 서비스는 없다. 수어 통역도 필요한 만큼만 진행된다. 청인 관객은 농인 배우 박지영의 수어에 집중해야 한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내려면 말이다. ‘과연 이 불친절한 연극이 잘 마무리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기우일 뿐이었다. 청인 관객은 농인 배우의 이야기를 읽어 냈고, 농인 관객은 청인 배우의 마음을 읽어 냈다. 진정한 베리어 프리는 이렇게 서로를 알아가는 데 있을 것이다.

 

사진제공 국립극단

연극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시계로, 엘사 아님> 농인배우와 청인배우가 서로의 언어로 대화하고 있다 – 사진제공:국립극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에게는 장벽이 많다. 특히 장애인이 연극을 보기 위해 공연장을 오기까지는 겹겹의 장벽을 통과해야 한다. 한 장애우가 장애인석이 운영되는 공연이고 교통수단이 확보되어 이동을 해서 공연장을 왔다고 하자. 장애인석이 운영되는 공연이라면 휠체어 정도 이동할 수 있는 이동로나 장애인 시설이 확보가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테니까 말이다.

 

장벽은 공연장을 들어와도 있다. 청각 장애인이라면 자막이 있어야 공연을 볼 수 있다. 시각 장애인이라면 공연을 설명해 주는 오디오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 더군다나 시각 장애인이라면 공연장 좌석 이동까지 안내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베리어 프리는 자막 해설이나 수어 통역을 제공한다고 해서 완성되지 않는다. 갖춰야 할 시설, 서비스, 관련 인력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많다.

 

그러니 배리어 프리를 안 하면 안 될까? 안된다. 배리어 프리는 단순히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장애인을 포함한 노약자 등 다양한 사회 약자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먼저 법에서 이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법은 ‘누구든지 성별, 종교 혹은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헌법 제11조 제1항),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차별하여서는 안 된다’(장애인 복지법 제8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무엇보다 배리어 프리의 확대는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한다. 드라마에 등장한 장애우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연극 무대에 오른 농인 배우의 연기에 몰입하게 되는 것은 장애와 비장애가 삶 속에 함께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발달장애인을 일상에서 쉽게 만나게 된다면, 우리가 농인들을 일상생활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면, 우리가 더 자주 같은 공연장 안에서 같은 연극을 보고 같은 감동을 나누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상대를 모르면 불편해지고 이유 없는 혐오의 감정이 고개를 들게 된다. 배리어 프리 공연이 아직 부분적이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많지만 그럼에도 이 연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나를 변화시키고 타인을 감동시켜 우리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착한 연대이기에 그렇다. 우리가 배리어 프리 공연을 보며 아이들에게 왜 이것이 필요한지를 설명해 주는 엄마가 되면 좋겠다. 옆자리 농인들에게 작은 손짓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관객이 되면 좋겠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 공연장에서, 무대 위에서 시작되고 있어 다행이다.

 

 


글 이숙정

 

공연전문 객원기자. 인터넷 신문 ‘민중의 소리’에 9년째 매주 공연 관련 글을 쓰고 있다.

공연을 사랑하는 자칭 공연매니아다. <나도 처음이야, 중년> <세상을 바꾸는 2%> 두 권의 책을 낸 출간 작가이자 비정규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공연을 통해 여성의 삶을 탐구하는 작업에 몰두 중이다.

글 이숙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