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의 기능과 목적

뉴스레터 2022년 8월호 칼럼 / 글 박두환

문화예술교육의 기능과 목적

 

문화‧예술이 점점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두터운 팬 층을 겸비한 뮤지컬들은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전석 매진을 기록한다. 전시는 더 이상 일부 계층만의 고상한 취미가 아니며 공방과 드로잉 클래스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시민 예술’의 역할을 해왔던 영화는 OTT 플랫폼으로 들어와 문화‧예술 향유의 경험을 더욱 간편하게 만들어주었다. 동시에 문화예술과 관련된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도 늘어가는 추세이다. 이런 때일수록 제대로 된 문화‧예술교육과 문화‧예술교육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예술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 방향성은 어떻게 되어야 할지 여러 문화‧예술교육의 사례들을 통해서 살펴보자.

 

문화예술교육은 왜 필요한가?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시민들은 <오이디푸스>와 <메데이아>와 같은 비극을 만들어 공연했고 관객들은 작품 속 인물들의 상황과 행동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을 개진했다. 이러한 과정은 대사를 주고받는 경험을 통해 화술을 훈련했고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토론의 능력을 향상시켰다. 연극을 통한 화술과 토론의 경험은 아테네가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고 유지될 수 있었던 발판이 되었다.

 

또 유가의 핵심 사상인 ‘예악사상’은 예(禮)와 악(樂)으로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교화하여 인(仁)을 실현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예(禮)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표하는 공경과 같은 마음이며, 악(樂)은 ‘음악’을 뜻하며 신분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공통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음악이었다. 이러한 공통의 경험은 신분 격차의 불만을 해소하고 사회 구성원을 조화롭게 만들어 질서를 유지시켰다.

현대에 들어 함께 영화나 전시, 공연을 보고 각자의 방식대로 감상을 나누는 모임이 늘어났다. 작품 감상의 교환은 다양한 사고와 가치관을 경험하고 수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나아가 작품에 대한 비판적이고 폭넓은 감상법과 안목을 겸비한다면 위에서 살펴본 문화‧예술의 기능인 사회통합과 공동체 유지라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예술교육의 기능에 대해 몇 가지 알아보자.

첫째,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공동체를 회복한다. 이기주의 혹은 개인주의라는 단어는 현대인들을 규정하는 단어로 고착되었다. 다른 사람 보다 자신의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러한 태도는 직접적인 예술 체험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 각각의 예술이 가지는 특성에 따라, 혼자 하는 예술과 함께하는 예술이 있을 수 있다, 함께 하는 예술인 오케스트라 합주, 연극 그리고 뮤지컬은 그 안에서 작은 공동체를 구성하고 공동체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활동은 배려심과 이타심을 향상시킨다. 혼자 하는 예술인 미술과 개인 악기의 독주 또한 타인인 감상자를 고려하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이타심을 기를 수 있다.

 

둘째, 능동적인 사고력을 기를 수 있다. ‘2020 아동 청소년 인권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중고생은 응답자의 27%에 달했다. 학업부담, 성적 등 학업 문제가 39.8%, 미래(진로)에 대한 불안 25.5% 등의 이유였다.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인해 주입식 교육이 청소년들의 수동적인 삶을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수동적 태도는 학교를 벗어나 모든 것을 능동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그러나 문화‧예술을 즐기고 예술 작품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감상하고 해석한다면 사고의 확장과 능동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능동적 사고는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이다. 점점 더 기계를 통한 자동화로 진입하고 있는 세상에서 인간들이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사회적 효용성과 자기 가치의 실현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생각해 낸 능동적인 사고를 통한 행위의 결과로 성취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다양한 가치 척도를 제시한다. 2019 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 연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OECD 22개 국가 중 20위로 최하위 수준이었으며, ‘삶의 만족’과 ‘어울림’, 그리고 ‘문화적 결핍’ 은 조사국 중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낸다. 반면, ‘학업성취도’는 상위 4위 이상을 차지하였다. 이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다양하고 글로벌화 된 기술적 풍요가 우리 청소년의 행복수준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에 경제적 성장이라는 단일한 목표만을 제시했던 교육의 결과이다. 저성장 시대가 도래하고 우리 사회가 그간 놓치고 있었던 기후 변화, 인권, 젠더, 공정 등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학업성취뿐만 아니라 개인의 고유한 특성과 능력들이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는 분위기가 되었다. 문화‧예술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화‧예술의 특징은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가치의 발견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다.

 

넷째, 불안한 삶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 철학가이자 소설가인 알랭 드 보통은 저서 「불안」을 통해서 부자든 가난한 자든 누구나 나름의 불안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이야기하면서 불안의 해결 방안을 다섯 가지 제시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예술’이다. 예술은 지위가 높든 낮든 누구나 향유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삶의 비평’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비판적인 시선으로 삶을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삶에 대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예술교육은 작품의 감상에서 ‘비판적 시선’을 교육해야 한다. 아테네 시민들은 비극 속 인물들을 통해서 주인공의 행동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시도인 ‘역지사지’의 마음과 탐욕과 오만으로 인해 비극적 결말에 처하는 주인공을 통해 ‘반면교사’로 삼으면서 현재의 불안을 극복해나갔다.

 

 

문화예술은 어떻게 교육되고 있는가?

 

예술교육은 크게 예술을 위한 교육(education for art)과 예술을 통한 교육(education through art)과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 예술을 위한 교육(education for art)

 

작품에 대한 제작 능력을 함양하는 교육으로 전문적인 예술가를 육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예술 특성화 중‧고등학교, 예술 전문 대학교와 대학의 예술전공 학과에서 전문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교육과정에서는 한 가지 부작용이 있는데 바로 ‘높은 예술 사교육비’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예술 진로 학생들의 사교육 현황과 효과성에 대한 인식 조사 연구에 따르면 예술 진로 학생을 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자녀의 예술 사교육에 지출되는 비용을 조사한 결과, 음악, 무용, 연기 등의 사교육비에 평균적으로 월 609,000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분야별로 지출되는 월평균 사교육비는 무용 825,000원, 음악 819,000원, 미술 132,000원이었다. 예술 진로 학생을 둔 학부모 100명을 대상으로 자녀의 예술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 정도를 조사한 결과 ‘매우 부담된다’가 24명(24%), ‘부담된다’가 56명(56%), ‘부담 없다’가 17명(17%), ‘전혀 부담 없다’가 3명(3%)로서 80%가 가계에 부담된다고 응답했다.

 

이와 같은 통계는 양질의 문화‧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대학으로 한정됨에 따라 문화‧예술교육의 목표가 대입이라는 목표로 변질되어 나타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이를 통해 학교 교육과 국‧공립, 민관 기관에서의 양질의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얼마나 그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을까?

 

#학교에서의 문화예술교육

2018년부터 고등학교 일반선택과목에 ‘연극’이 개설되었다. 기존에 음악과 미술로 한정되었던 예술 교과 교육에서 연극체험을 통하여 학생들이 친구와의 협업과 배려의 미덕을 배우고, 연극의 종합 예술적 특성을 활용하여 음악‧미술‧무용‧영화 등 인근 교과와의 통합교육을 가능케 한다는 목적이다. 이러한 조치는 예술교육 활성화 등을 통해 인성교육과 융합교육을 강화한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고 다른 지식과 결합하여 결과물을 만드는 연극 제작의 과정은 현대 교육의 핵심인 ‘통섭적 사고’를 가능하게 해준다.

 

또 학교에서는 동아리 활동을 통한 자치적인 문화‧예술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영화 제작 동아리, 연극 동아리, 뮤지컬 동아리 등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제작과 연습 과정에 참여하여 결과물을 만들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각종 영화제나 연극제에 작품을 출품하여 수상의 기쁨과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다.

 

#공립 기관 국립현대미술관 도슨트 양성 프로그램, 열린 강좌

국립현대미술관은 25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전문자원봉사자(도슨트)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도슨트 활동을 위한 기초 이론 및 실무 교육의 기초과정을 이수하면 국립현대미술관 도슨트 자격을 부여한다. 또 국립현대미술관은 디지털 시대, 기술 기반 예술의 시원을 찾아보고자 ‘확장된 장(場)과 경험의 변화’를 주제로 1960년대 미술과 기술을 소개하는 근현대미술사 아카데미를 개설했다. ‘플럭서스와 백남준’, ‘백남준이 쏘아 올린 미디어아트의 미래’, ‘매체와 예술, 경계 공간’등 1960년대 이후 미술의 변화와 특징을 살펴보는 수업으로 대면, 비대면에 따라 100~200명을 대상으로 무료로 진행되었다.

#민간 두산아트센터 창작 워크숍

두산아트센터는 2022년 올해로 7기 창작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연기‧제작, 희곡, 연기‧연출의 세 영역에서 성수연(배우), 진주(극작가), 김정(연출가) 등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극장 발표, 낭독회와 같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두고 두 달 동안 체계적인 교육을 진행한다. 연기와 연출은 전공자 또는 유경험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극작의 경우 전공에 무관하게 교육을 진행하고 신청자에 한해서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두 번째, 예술을 통한 교육 (education through art)

예술을 통한 교육은 자신의 문화와 예술을 익히고 삶의 방식을 배워가는 자발적인 학습으로서, 문화‧예술을 매개로 인간의 창의성을 육성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며 인간의 궁극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교육이라 할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에서는 앞서 말한 ‘예술을 위한 교육’보다 ‘예술을 통한 교육’에 조금 더 방점을 두고 있다. 개인의 예술적 능력 향상보다는 시민 사회 전체가 심미성, 창의성, 능동적 소통, 비판적 사고의 능력을 갖추고 나아가 다양성을 수용하고 건강한 시민 사회가 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을 통한 교육의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알아보자.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

빈곤은 나누지 못해서발생합니다. 예술을 누리는 것은 모두의 권리입니다. 공정한 사회와 공정한 문화는 함께 가야 합니다. 음악 교육을 통해서 현실 그 이상의 꿈을 꿀 수 있습니다. ‘확산되지 못하는 좋은 일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2010년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엘 시스테마> 창시자 아브레우 박사 수상 소감 –

 

문화‧예술교육의 대표적인 사례로 경제학자이자 오르간 연주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총과 마약으로 얼룩진 베네수엘라 청소년들에게 총 대신 악기를 쥐어주었다. 허름한 차고에서 11명으로 시작한 이 음악 교육 프로그램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 현재는 30만 명에 달하는 단원을 보유하였다. LA 필하모닉 최연소 상임 지휘자가 된 ‘구스타보 두다 멜’역시 바로 이 <엘 시스테마> 출신이다. 두다 멜 은 “우리가 배운 것은 음악을 통한 성공의 길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라고 말했다. <엘 시스테마>는 가난과 폭력에서 어떻게 스스로의 삶을 자신이 다루는 악기처럼 조율하고 이렇게 조율된 악기가 자연스럽게 다른 악기들과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것처럼 건강한 개개인이 모여 아름다운 공동체를 일구어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위에서 살펴본 ‘예술을 위한 교육’과 ‘예술을 통한 교육’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문화‧예술교육의 특성상 교육자는 아브레우 박사가 오르간 연주자였듯이 스스로 예술가여야 한다. 미국의 ‘시애틀아트뮤지엄’의 공공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인 데이비드 루는 무용인들을 위한 행정인력양성 프로그램의 초청 강연에서 ‘행정업무’를 위한 수강자들에게 움직임을 가르쳐주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무용수로 지내면서 무용실에서 한 동작과 경험들이 팀워크 능력과 리더십 능력을 향상시켰고 현재의 위치에 오기까지의 발판이 되었다고 얘기했다.

 

 

문화예술교육의 미래

주춤했던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8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는 우리의 일상을 위협했고 시대가 직면한 문제를 피부로 느끼게 해주었다. 문화와 예술은 이러한 시대적 문제를 인식하게 하고 더 나아가 나름의 해결 방안을 제시해왔다.

 

팬데믹을 겪으며 공연, 영상은 물론 예술교육에도 자연스럽게 ‘메타버스’의 키워드가 자리 잡았다. 디지털 네이티브를 겨냥하여 예술교육이 온라인으로 들어가는 것은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보편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디지털 취약계층 간과의 정보격차와 양극화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위험이 따른다.

 

오프라인에서도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문화가 있는 날을 비롯하여 문화누리 카드, 나눔 티켓,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예술 치유 프로그램 등의 공공지원을 통하여 문화 향유 기회를 높일 수 있는 정책들을 펼쳐오고 있다.

 

무엇보다 문화‧예술교육의 핵심은 시민들이 꾸준한 문화‧예술적 경험을 통해 쌓인 ‘문화 자산’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문화와 예술을 폭넓고 깊이 있게 해석하는 자신만의 시선을 가지게끔 하는 것이다.

 


 

글 박두환

 

예술교육 아카데미 예술도서관 대표

중앙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인문학과 철학을 바탕으로 예술을 교육하고 있다.

예술교육자, 공연기획자, 창작자, 배우로 활동중이며 예술교육 아카데미 예술도서관의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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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