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실패한 취미가 있나요?
“취미가 뭔가요?” 참 많이 묻고 듣는 질문이다. 하지만 나는 선뜻 대답할 취미가 생각나지 않는다. 독학하겠다며 샀던 프랑스 자수 키트, ‘가갸거겨’만 쓰고 끝내버린 캘리그라피 책, 바쁘다고 그만둬버린 필라테스, 영어회화 등 실패한 취미들만 떠오른다. 실패했다고 하면 낙오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지만, 실패는 패배가 아니다. 실패를 경험했다는 것은 ‘도전’했다는 멋진 일일 테니까. 화성인들과 실패한 취미를 이야기해보며 아픔을 웃어넘기고 다시 재도전할 용기를 충전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묻는다.
“당신은 실패한 취미가 있나요?”
누구나 그렇듯 학창 시절에는 학업에 몰두하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에 몰두하며 반50살을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을 위해 몰두하는 취미는 놓치면서 살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군인 시절 이런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신선한 취미를 찾아보자 생각했고, 고민 끝에 결정한 것은 바로 뜨·개·질! 남자가 뜨개질을 취미로 한다는 것이 뭔가 모순적이면서도 좋았다. 초등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십자수를 잠깐 해본 기억을 더듬어 군대 말년 휴가를 나와 뜨개 용품을 사고 뜨개질 방법도 열심히 찾아보며 배웠다. 한 2주간은. ‘니트를 멋지게 떠서 엄마, 아빠, 동생까지 만들어줘야지!’라는 다짐으로 시작했지만, 군대 제대 후 복학 준비에, 등록금 마련을 위한 알바에, 여자친구를 만들기 위한 소개팅에, 사회인으로서의 준비에 시간을 다 뺏겼다. 물론 핑계에 불과했지만…. 그렇게 20대에 새로 찾은 첫 취미생활은 무참히 실패했다. 그래도 추억이랍시고 그때 그 뜨개질의 일부를 고이고이 보관 중이다.
작년 이맘때 갑자기 ‘건강관리를 위해 매일 조깅까지는 못해도 산책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퇴근 후 매일 30분씩 어떤 날은 장 보러 가는 길에, 또 어떤 날은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흥겹게 산책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겨울이 오고 날씨가 쌀쌀해졌지만, 산책 습관은 없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몹시 추웠던 어느 겨울날, 멀쩡하던 집 벽면에 곰팡이가 번지면서 침대까지 상해버리는 일이 생겼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온통 침대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차 버렸다. ‘이 침대를 어떻게 하지? 버려야 하나? 살릴 수는 없을까? 벽은 어떻게 하지?’ 등. 이런 생각들로 도저히 다른 생각에 집중할 수 없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순차적으로 벽면 도배와 침대 교체가 끝난 이후에는 산책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됐다. 멀쩡했던 침대를 버리고 새로 샀기 때문인지 무의식적으로 본전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인지 틈날 때마다 계속 침대에서 굴러다니다 보니 어느새 침대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몸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퇴근 후에 운동화로 갈아 신고 문밖을 나서던 내 모습은 이제 찾을 수가 없다. 산책하는 취미는 사라졌고, 매일 침대에서 굴러다니고 있지만 행복하다. 여전히 햇볕은 뜨겁고 침대는 아늑하니까.
요리하고는 참 거리가 먼 나. 가까워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화성시 장학금으로 무얼 배울까 고민하던 중에 요리 수업을 신청하게 됐다. 요리 전문학교에서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호텔 브런치 특강이었다. 일주일 배워서 과연 요리의 ‘요’자는 배울 수 있을까 싶었지만, 강의 첫날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요리 수업을 받는 걸 보고 ‘아, 요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의 반 이상이 화성시 장학금으로 요리를 배우러 오신 분들이었다! 놀라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렇게 매일 브런치 요리를 배우고 집에 가서 신랑에게 해주었는데, 반응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맛있다, 잘했다, 그 한마디가 무뚝뚝한 그에겐 그렇게도 어렵나 보다. 어렸을 적 우리 엄마는 항상 요리해주시고 ‘맛있지? 어때, 정말 맛있지?’라는 질문을 맛있다고 대답할 때까지 물어보셨다. 지금 내가 그 나이가 되어 보니,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신랑의 무심한 반응으로 일주일간의 배움은 뒤로하고 다시 요리와는 멀어졌다. 비록 실패로 끝난 나의 요리 도전기가 과연 언제쯤 다시 시작될지는 알 수 없다.
오래전부터 습관처럼 연초에는 항상 나를 위한 무언가를 꾸준히 해보자고 결심하곤 했다. 유명인이 추천하면 내 정서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따라 하기도 했다. 어떤 작가의 여행 서적을 접하면 ‘그래. 여행 좋지. 낯선 곳에서의 낯섦이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 낼 것이니 얼마나 설렐까!’라며 몇 군데 유명지를 다녀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젠장! 먹어야지, 자야지, 이동해야지, 예상보다 비용이 과했다. 통과. 그렇다면 정해진 비용의 한도 내에서 할 수 있는 악기를 배워보자. 연습용 플루트를 사 들고 취미 만들기에 도전하는 것처럼 문화센터 음악실을 참 열심히 들락거렸다. 개폼도 잡으면서. 파헬벨의 캐논을 멋지게 연주하는 상상을 하며 입술이 부르트도록 불어댔지만 과욕이었다. 음을 제대로 내지 못해 취미로 하기엔 소질이 없어도 너무 없음을 깨닫는 데는 1년 반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보류. 이 모두가 오래전 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좋다. 내 상황에 따라 이어갈 수도 있지만 꼭 실패한 취미라기보단 내 인생의 좋은 경험으로 꾸역꾸역 우길 수 있기도 하고. 취미란에 한 줄의 작은 점 정도라도 끄적여 넣을 수 있었으므로….
한참 자전거에 푹 빠졌던 적이 있었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버스로는 다섯 정거장, 걸어서는 50분이었기 때문에 운동도 할 겸 자전거를 사서 타고 다녀보기로 했다. 가끔 공유 자전거를 빌려 타면서 느끼는 시원한 바람과 자유로운 기분을 출퇴근할 때마다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호기롭게 새로 산 자전거를 끌고 출근에 올랐는데…. 생각보다 출근길에는 오르막길이 많았고 가을 날씨에도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어찌어찌 겨우 도착한 회사. 근무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지쳐버린 나는 퇴근길에 자전거를 탈 생각을 하니 한숨만 푹푹 나왔다. 결국 첫날 자전거를 회사 창고에 두고 버스를 타고 퇴근했다. 내일은 타고 가야지, 모레는 타고 가야지, 매일 다짐했지만 결국 그 회사를 퇴사하는 날 동료에게 그 자전거를 팔고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기도 하고 나 자신이 조금은 한심하지만, 섣불리 한순간의 기분에 들떠 충동적인 소비를 하지 않게 된 계기가 된 듯하다.
매일 폼롤러를 하겠다 다짐하고 야심 차게 폼롤러와 요가 매트까지 구매했으나 그 결과는 목이 시원한 베개행이었다. 처음 몇 주간은 열심히 유튜버들을 보며 따라 했다. 하지만 금세 운동을 따라 하는 시간보다 그 위에 누워 다른 영상들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 버렸다. 그래도 누워있으면 목이 시원해지는 것을 보면 혈액순환에 효과가 좋다는 게 거짓은 아니었나 보다. “어디 누워만 있어도 다이어트 되는 방법 없나요?”
20대 중반쯤 서양에서 생각하는 중산층은 정신적·문화적 소양을 기준으로 한다는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다. 외국어 능력, 악기연주 능력, 직접 하는 스포츠, 직접 만드는 요리, 자신의 주장에 대한 신념과 사회에 대한 공분 등 한국과는 전혀 다른 기준이라 흥미로웠다. 마침 일본어를 배우고 있었고, 한참 배드민턴을 치고 있을 때라 악기연주를 배워보고자 마음먹고 통기타에 도전했다. 핑거스타일 기타가 무척 멋있게 보인다는 게 선택의 이유였다. 문화센터 주말반으로 등록을 마친 뒤 장비를 다 갖추고 첫 수업에 갔는데, 초등학생들 사이에 내가 유일한 직장인이었다. 첫 수업을 마친 뒤에 찾아오는 현실 자각 타임. 배움에 늦은 나이는 없다며 계속해보자고 다짐했지만, 어린이들의 습득 속도를 따라갈 순 없었고 버벅대는 손가락과 늘지 않는 실력에 자괴감이 들어서 수업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다. 그 후로 통기타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전시되다가 몇 년 전 필요한 분께 보냈다. 악기는 손 놓고 있다가 최근 큰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도 같이 배우고 있다. 다행히 통기타보다는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고 레퍼토리를 늘려갈 수 있도록 꾸준히 해보려 한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도, 관심도 없어서 악기 다루는 것엔 흥미가 없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이후 취미가 음악인 사람들을 보면 멋있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악기를 다루는 분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평소 좋아하던 팝송에 맞춰 한 곡 정도는 열창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엄마 지인분이 안 쓰던 기타를 주셔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친한 친구에게 기타 레슨을 받게 되었고, 첫 수업은 서울대공원에서 진행했다. 그런데 기타를 배우면서 내 손가락이 짧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F코드는 정말 난이도가 높았다. 그러다 기타 줄이 끊어졌는데, 그 순간 알았다. 기타는 나랑 연이 아니라는 것을. 결국 그날은 사진만 열심히 찍고 돌아왔다. 그 뒤로는 기타를 배우지 않았지만, 여전히 기타 하나 매고 버스킹하는 일반인이나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실패한 나의 취미생활은 손가락이 짧다는 신체적 한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겉멋에 취해서 연습 과정을 스킵하고 바로 결과를 내고 싶었던 욕심 탓일까. 언젠가 다시 배워서 한 곡 정도는 꼭 연주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