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기준으로 관계를 분류하나요?"
인간관계에서 만남과 전화, 문자가 주된 소통의 방식이던 시절에는 소수의 친구와 깊은 친밀감을 쌓아갔을 것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코로나19로 인한 단절을 경험하면서 소셜미디어가 급속히 성장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관리해야 하는 관계의 숫자도 많아졌다. 수많은 인간관계에 각종 인덱스를 붙였다 뗐다 하며 관계의 효용성을 극대화한다는 의미의 ‘인덱스 관계’라는 말도 생겨났다. 분명한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만든 관계 또는 완전한 우연으로 이루어진 랜덤의 관계가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화성인들은 어떤 기준으로 인간관계를 분류하고 있을까? 화성인들의 인간 관계도가 궁금해졌다.
나의 인간관계는 첫인상 30% 그리고 함께 지내며 공들인 시간 70%로 맺었다. 사랑할 사람일지, 좋아할 사람일지, 존경할 사람일지, 그냥 대충 인사만 하고 지내야 할지, 나는 분류했다. 그렇지만 이제 내 나이 50대. 사람을 다 안다고 하기에는 교만하고, 사람을 아직도 모른다고 하기에는 ‘너무 순진한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에. 인덱스, 그런 거 없다. 그리고 마음과 시간이 중요하다. 관계의 효용성 그런 거 따지면 사람을 만나지 말고, AI가 최고의 사람이 될 듯하다. 이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지만! 인간관계, 카톡 친구수가 아니라 얼굴 마주보고 수다 나누고,한 잔 차 마실 그런 사람이면 족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차를 마신다. 내 배우자와 함께 속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아자아자~
나는 인간관계를 가끔 정리·정돈한다. 예를 들어 경조사 참석 여부, 연락에 바로 응답하는 경우와 응답이 없는 경우, 자주 만나는 빈도, 직장·가족·친척에 가깝고 먼 사람의 차이, 내가 자주 연락하는 즐겨찾기 그룹 등이다. 어릴 적엔 핸드폰에 연락처가 많았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경조사를 거칠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지금은 결혼 10년 차 두 아이의 엄마, 직장인으로 살다 보니 단순해졌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 이젠 기억조차 안 나는 사람,굳이 사생활을 알려주기 싫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단순해지는 게 더 편해지는 것 같다. 모든 인간관계를 챙기기엔 시간이 너무 짧다. 이렇게 점점 나이를 먹어 가는가 보다.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단 두 가지로 분류한다.
1. 나를 배신하지 않을 사람들
2.나를 배신할 수 있는 사람들
가장 혐오하는 분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직장에서 본인이 살기 위해 타인을 따돌리거나 공금 횡령을 하는 사람들을 봤다. 이들은 어느 때나 기회만 오면 사람을 배신할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매우 잘 대해줘서 그들의 선한 이미지에 현혹되어 나를 배신하지 않을 사람들이라고 착각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악랄한 사람들은 내 주변을 맴돌며 가장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언젠가 내가 가장 위험해질 수 있는 그 순간에 나의 가장 치명적인 부분을 타격해 몰락시킬 수 있다. 직장과 같이 기업의 이윤을 목적으로 만난 사람들과 인간적인 정을 기대하기 어려운데, 나에게 과도하게 잘 대해주는 사람들은 거리를 유지하는 편이 좋겠다.
직업 특성 상 주말 근무가 많아 연락이 와도 약속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래서 인간관계 자체가 매우 좁다고 생각한다. 오랜 친구는 기껏해야 중학교 시절부터 지내온 대여섯 명이 전부였으며, 이 친구들과의 단체 대화방은 1년에 많아야 4~5번 얘기할 정도다. 연락할 때마다 오랜만이라는 안부보다는 아직 살아있냐는 다소 짓궂지만 친근한 인사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런데도 어색함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익을 대로 익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은 다른 생각일지도 모른다.)
이후 대학에 가서 만난 선·후배와 동기들이 있다. 선배들은 거의 1학년 때만 보고 군대를 다녀온 뒤 복학하고 나서는 못봤다. 자연스레 동기 및 제대한 후배들 위주로 만나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연락하는 학연도 네다섯뿐이다. 직장을 다닌 뒤 결국은 직장동료들과 어울리게 되더라. 시간이 지나면서 각각 이직과 결혼, 연애로 인해 자연스럽게 물리적 거리두기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 연락하고 지내는 친한 전 직장동료와 현 직장동료가 있긴 하다. 업무적으로 공감대가 많아서 그런지 대화가 적지 않다. 온라인 인간관계도 있다. 아파트 입주민 모임이다. 그중에서도 동갑내기 단톡방이 하나 있는데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정보교류에도 도움 되고 소소한 재미가 있는 관계다. 물론 실제로도 간간이 만나서 커피나 술도 한잔한다. 성격 좋은 사람들이다.
결국은 현재 나의 상황에 가장 인접해 있는 곳에서 교집합을 찾게 되는 것 같다. 현재의 직장 또는 직업 네트워크, 거주지에 따른 지역 네트워크, 나이에 따른 세대 네트워크. 가장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서 그렇지 않을까?
무심코 핸드폰 연락처를 뒤적거려본다. 어지러이 널려 정리되지 않은 아들놈 책상 서랍처럼 어떤 관계들이 차곡차곡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한다. 정리해야겠다 싶은 마음에 한 사람을 끄집어냈다. ‘이 ,사람으로 인해 내 감정이 상한 적이 있었던가? 아. 있었구나.’ 과감하게 삭제 버튼을 누른다. ‘어쩌면 이 사람은 이미 날 지웠을지도 몰라.’ 냉정한 위로를 하면서 다음 사람을 호출한다. ‘이 사람은 날 웃게 했구나. 참 많이 웃게 했구나. 날 지우지 않았겠지!’ 추측성 확신을 하면서 고이 저장하고 또 다른 사람을 불러낸다. 하루를 같이 있어도, 몇 시간 수다를 나눠도 지겹지 않으며 이 사람이 나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하면 너무 슬퍼서 삶이 무너져 내릴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사람 몇몇이 자리하고 있다. 나름 성공한 삶이네, 우기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어느 날 카카오톡 목록을 주욱 들여다보다 ‘이 많은 사람 중에 나와 꾸준히 연락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예전에 알았고 때론 친하기도 해서 서로 연락하는 사이였지만 지금은 아예 연락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나도 요즘 트렌드라는 ‘인덱스 관계 정리’를 해보기로 했다.
관계 정리 기준은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로 정했다. 1년 이상 연락 안 한 사람 ‘숨김’하기. 그 중에 또 일부는 단호히 삭제하기. 하지만 망설여지는 일부는 일단 보류하기. 목록으로 보이는 친구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이 즈음에서 나의 인덱스 관계를 살펴보면 카톡 대화방으로 분류가 되는 것 같다. 우선 나의 자식들과 연관된 가족 채팅방(내게 가장 소중한 관계), 그리고 시댁 식구 대화방, 언니·오빠들이 포함된 친정 식구 대화방, 초등 시절부터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방, 아이들 어릴 때부터 이어져 온 학부모 대화방, 취미생활로 만난 사람들 대화방 등 지금까지 나와 꾸준히 연락하고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 이 무리에 속해 있다. 이 중에는 더 자주 만나고 마음을 공유하면서 아주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있고, 그냥 단순히 무리의 일부분인 사람도 있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의 무게가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나이 들면서는 새로운 만남을 만들기보다 지금까지 이어온 인연에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한다. 다만 만날수록 불편한 사람, 내 마음에 상처주는 사람들은 멀리 하고 산다. 나와 마음이 잘 통하고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 만났을 때 행복한 소수의 사람과 마음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평소에 SNS에 큰 관심이 없어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정도만 사용하고 있던 차에 이번 주제를 접하면서 처음 ‘인덱스 관계’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혈연, 지연, 학연을 바탕으로 직접 만나거나 전화, 메시지로 소통하던 예전 인간관계에서 이제는 다양한 미디어의 출현으로 얼굴도 모르는 불특정다수와 소통하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사실상 우리 나이에는 자의든 타의든 인간관계 다이어트가 이루어지는 시기로서 ‘과연 주제에 적합한 내용을 담을 수 있을까?’ 고민도 되었지만, 나의 관계 분류 기준은 첫째, 자주 얼굴 보며 주변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는 가까운 가족, 친지, 친구들이다. 둘째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같은 목적 지향으로 만나고 있는 동호회원들이다. 셋째는 내 하루의 절반을 같이하고 있는 직장 동료들이다. 다양한 루트를 통해 만남의 기회가 넓어진 만큼 여러 종류의 관계가 생겨나지만 어떻게 해야 더 행복한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할 수 있는지 각자가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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