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현 극단 민들레 대표
배우이자 작가, 연극연출가, 극단대표. 이 모든 이름은 연극에 대한 송인현 대표의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화성 사람이다. 우정읍 이화리의 고즈넉한 농촌에서 구슬땀 흘리며 민들레 연극마을을 일구고 있다.
1996년에 창단한 (주)극단 민들레는 한국 전통과 신화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창작물을 만들어 공연한다. 극단의 대표작은 ‘마당을 나온 암탉’, ‘똥벼락’, ‘돈 도깨비’, ‘이야기 심청’ 등 이다. 송 대표가 만든 작품의 중심에는 늘 어린이가 있고, 극단 구성원들은 아동극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청소년들에게 쉬운 공연을 보여주는건 반대예요. 해외 어린이극에서는 철학을 다룹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죠. 제가 그런 연극을 만들려고 하면, 모르는이는 그건 어린이 연극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저는 작품에 있어서 아동청소년극을 구분하지 않았으면 해요. 나이를 떠나 인간으로 대하는 것뿐입니다.”
경연대회를 멀리한다. 연극제 작품 출품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 오랜 고민으로 만든 작품이 대회의 기준에 맞춰 바뀌는 것이 싫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화가 조광호 신부의 영향이 컸다.
“신부님이 그러시더군요. 잘 그렸냐, 못 그렸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게 너의 것이냐 아니냐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제 작업에 큰 기준점이 된 말이에요.”
사회의 지원을 받은 만큼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발휘하고, 봉사한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TV프로그램을 시청하던중 한 과학자의 말을 듣고는 큰 착각임을 알게 됐다.
“한 학생이 과학자에게 과학 잘하는 방법을 물었어요. 그의 대답이 참 충격적이었죠.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며, 특히 예술가들을 만나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들은 매우 창의 적이기 때문이라고요. 순간 내 작업이 사회에 창의적 아이디어를 주고 있는 것인지 고민했어요. 그 이후로 저는 ‘For(위해)’라는 말을 못 씁니다. 교만이었죠. 꾸준한 독창적 작업만이 비로소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작품에 매뉴얼Manual을 만들지 않는다. 예술이 매뉴얼을 갖는 순간 망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선보인 연극이라도 다음 해엔 초연 준비하듯 연습한다. 무엇보다 작품의 가치를 관객과 나누려 한다.
“관객을 정의해 보세요. 누구죠? 그들은 동시대인입니다. 유명한 고전 작품도 이 시대에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눈이 필요해요. 예술가는 이 시대에 어떤 가치들이 있으며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안테나를 세우고 꾸준히 고민해야 합니다.”
송 대표는 독창성과 완성도도 갖춰야 한다면서 사회는 작품의 완성도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의 말마따나 요즘 대중문화 소비 흐름을 살펴보면 ‘베스트셀러’, ‘천만 영화’ 타이틀이 붙은 작품만이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장르의 다양성은 점차 희미해지고, 막대한 홍보비가 작품의 흥행을 판가름하고 있다.
“이번 품앗이 공연예술축제는 가수들이 중심이에요. 그중에는 가창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분들도 있죠. 실력이 없는데 가수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럼 가수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에겐 순수한 물음이 필요해요. 자신만의 기준으로 작품을 선택하고, 자발적으로 예술을 소비하는 계층을 만들어야 합니다.”
오는 8월 25일부터 3일간 민들레연극마을에서 ‘제15 회 품앗이 공연예술축제’가 펼쳐진다. 환경, 평화, 전통을 주제로 이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송 대표는 축제가 단순히 재미에 그치지 않고 어떤 가치를 전달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그 연극을 어린이부터 노인이 잘 소화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예술감독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시골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돼야 해요.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는 작품도 선정 해야합니다. 축제를 기획할 때 관객이 집중해서 볼 것과 가볍게 즐기면서 볼 것을 균형있게 나눠요.하루를 온전히 문화로 즐기는 방법을 생각하는 거죠.”
이어 송 대표는 하루 동안 방문객이 민들레연극마을에 체류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요즘은 기존 오프라인 공연 방식에서 벗어나,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공연하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관객을 정의해 보세요. 누구죠? 그들은 동시대인입니다.
유명한 고전 작품도 이 시대에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눈이 필요해요
시골에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돼야 해요.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는 작품도
선정해야 합니다
지난 5월에는 도서 《방정환 어린이 연극론》을 출간했다. 아동문학가로 널리 알려진 방정환 선생의 입체적 면모를 알리기 위해서다. 방정환 선생의 글의 특징과 구연口演 연기 방식을 연구한 책이다.
“방정환 선생은 누구나 하기 쉬운 연극 운동을 주도하셨어요. 아름다운 우리 말을 널리 퍼트릴 수 있도록 독려했죠. 저는 그가 배우였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많은 사람이 선생을 입체적으로 봤으면 합니다. 책을 쓴 것은 어린이 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이기도 해요.”
송 대표는 한국 전통과 신화를 주제로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고 있다. 옛것을 그대로 고수하는게 아니라 요즘의 감각을 덧대 미래로 이어지는 전통을 선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신화 그림으로 수놓아진 ‘신화 마당’도 꾸미는 중이다. 화성 예술가들이 이곳을 창작 터전으로 삼아 각자의 역량을 펼쳐 보일 수 있는 광장이 되길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농촌의 장점을 살려 아이들에게 맨발로 포근포근한 흙을 밟게 하고 싶다며 싱긋 미소 지었다.
순수한 시선, 예민한 감각, 기민한 움직임으로 어린이 연극을 만드는 송인현 대표의 일상은 이렇게 흘러간다. 어린이들은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연극을 양분으로 삼아, 민들레연극마을이라는 화분에서 쑥쑥 자라나갈 것이다.
글 배미진
사진 박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