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유경희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무척 좋아했다. 오직 그림만을 바라보고 걸어온 삶이었다. 동아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결혼 후에는 생계를 위해 10여 년간 미술 학원을 운영했다. 부지런히 방문 미술 수업도 다녔다.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청년은 차츰 세상을 배웠다. 고단함과 우울함, 좌절과 아픔으로 점철된 지난한 나날이 흐르고, 그토록 사랑했던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행복을 느꼈다. 유경희 작가는 과거를 회상하다가 울컥 눈물을 보였다. 우리는 때로 백 마디 말보다 한 방울의 눈물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누구나 나름대로 사정이 있잖아요. 저마다 어려움도 분명 있고요. 이제는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유경희 작가는 2008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정물화와 풍경화를 그리다가 자신만의 색깔을 찾으려 했다. 사물의 외면을 묘사하는 게 아닌, 인간 내면의 영역에 다가서기로 했다.
여인을 그려왔다. 그리고 있다. 앞으로도 그릴 것이다. 여인은 유경희 작가에게 미적 영감을 주는 페르소나이자, 자의식의 표현이다. 그는 여인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있다. 캔버스 위에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면서 복잡미묘한 심리를 투사하고 있다.
“우리 주위만 둘러봐도 온갖 군상이 있어요. 그 속에 억압받는 여인, 삶을 주체적으로 즐기는 여인 등 그 모습은 제각각이죠. 제가 그려낸 여인은 여러 감정을 복합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작품 해석은 관객의 자유입니다.”
관람객은 그림을 통해 여인의 세상을 이해한다. 캔버스에 그려진 저 여인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슬픈 눈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며 왜 표정을 확연히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내가 슬퍼서 이 여인이 슬퍼 보이는 것일까? 제3자가 해석하는 여인의 삶은 사실 본인의 현재심리가 투영된 것이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일 수 있다.
“계속해서 여인의 삶을 연구하고, 인간의 희로애락을 조명할거예요. 멀리 보면 다 비슷하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개인으로 보면 각자의 삶이 있는 거잖아요. 그 다름을 표현하고 싶어요.”
캔버스를 가득 채우는 빨간색은 강렬하면서도 매혹적 인상을 심는다. 작가가 즐겨 쓰는 색이기도 한데 열정과 정열, 도발, 위험한 끌림이 느껴지는 색이자 인간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색이다. 어쩌면 빨간색에 끌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 수 있다.
“참고하는 모델은 없어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 그대로 그리려고 하죠. 색상은 붉은 계열을 많이 사용했는데 조금씩 밝은 색상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요. 변화는 제게 또 다른 영감을 주니까요.”
유 작가는 2019년 양감면 대양리에 있는 솔미작가촌에 자리를 잡았다. 함께하는 동료는 달항아리 작품으로 유명한 최범용 작가와 부메랑에 색을 입히는 석동미 작가다. 저마다의 작품 세계를 가진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솔미작가촌에서는 토요일마다 화성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2023 플레이엄-예술비스트로 시즌2’를 진행한다. ‘플레이엄’은 예술가, 예술교육자가 자신의 작품과 작업을 매개로 시민을 만나고 예술교육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작가촌에서는 삼대 가족이 자연에서 즐길 수 있는 예술 활동을 운영한다.
“매주 토요일 양감면 대양리의 한적한 농촌에서 남녀노소 자연을 맘껏 즐기다 가는 시간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화성시문화재단 사업에 선정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솔미작가촌 잔디마당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아이와 부모가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향유하다 가시죠.”
그러면서 유 작가는 “사업의 규모를 떠나서 재단과 함께 협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된다”며 지역작가를 챙기는 화성시문화재단의 관심에 고마움을 표했다. 또한 인구가 늘며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화성에 문화예술 인프라가 폭넓게 구축되길 희망했다.
유 작가의 목표는 다작多作이다. 살아있는 동안 1만 점은 그려야 하지 않겠냐며 싱긋 미소짓는 그에게서 예인의 우직함과 집요함이 느껴졌다. 앞으로 유 작가가 그려낼 여인의 모습은 어떨지 사뭇 궁금해진다. 마지막으로 그는 “인물화 혹은 여인 그림 하면 유경희를 떠올리면 좋겠다”라는 소망을 전했다.
글 편집실
사진 박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