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군 책마을 해리
책마을해리는 책이 태어나는 마을이에요. 평생 독자로 살기 마련인 누군가를 저자로 만들어내는 마법이 일어나는 곳이죠. 책을 낳는 저자는 우리 지역의 여러 주체이고요. 이때 여러 주체란 어린이부터 청소년, 청년, 일반인에서 노년층까지 모두를 말해요. 이들을 책의 저자가 되도록 만드는 프로그램이 ‘출판캠프’예요. 책마을해리에는 인문교양출판브랜드 ‘도서출판기역’이 있고요. 어린이 청소년브랜드인 ‘나무늘보’, 그림책브랜드로 ‘책마을해리’가 국내외 독자와 만납니다. 그 일을 담당하는 구성원도요. 공간 책마을해리를 다듬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구성원, 책마을해리와 처음 만나는 책방해리를 지키는 멋진 매니저도 있고요. 책마을해리 안 버들눈도서관 운영자도 함께해요. 책을 매개하는 역할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데요. 책을 매개하는 일이란, 책을 읽게도 쓰게도 펴내게도 하는 다양한 갈래의 매개 역할을 말해요.
온통 책 읽고, 글과 그림을 만지고 책 펴내는 일 속에 빠져 살다보니 책과 연계한 거의 모든 활동을 해보았어요. ‘온통’에 힌트가 있어요. 순간순간을 책으로 살다보니, 생각이 미치는 것이에요. 미치면 미친다는 말, 허투르지 않아요. 지난 9월 중한국, 일본, 스페인, 싱가포르, 베트남, 이란 등 여러 나라 청년예술가들과 멘토 예술가 몇몇이 함께 <고창국제생태예술제>를 치렀어요. 갯벌 바다가 가까운 책마을해리에서 오래전부터 생태학교를 열어왔어요. 그 바탕에서 지난해부터 열어온 예술가들의 생태전환 예술활동이에요. 작업의 결과는 책마을 안 갤러리해리 1관에서 전시하고 있어요. 놀러 오세요. 예술제는 10월 초순 일곱 번째 책영화제와 그림책학교 ‘우리 안 그림책 행성을 찾아서’로, 10월 중순 예술비평학교 ‘행성지구인문학’으로 이어져요. 관심있는 분들 함께해요. 앞으로 고민하는 프로그램은 ‘첫사랑과 책’이에요. 누구나 아릿한 기억으로 갖고 있거나, 지금이거나 앞으로 겪게 될 일, 첫사랑을 책으로 슬쩍 풀어보는 것인데요. OTT 서비스 ‘티빙오리지널’과 함께 10월 초에 조금씩 윤곽을 드러낼 겁니다. 기대해주세요.
가장 애정하는 공간은 말이죠, 20년 가까이 책마을해리 학교 공간과 엎치락뒤치락해 와서 어느 한 곳을 빼놓을 수 없어요. 그래도 꼽자면 나무 위 집 ‘동학평화도서관’이에요. 책마을해리가 만들어지기 전 학교로 운영될 때 1회 졸업생 할아버지들이 이웃 학교에서 가지를 꺾어와 심은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다섯 그루 자라고 있어요. 그 가운데 가장 우람한 나무에 올린 작은 나무집이 작은 도서관이죠. 고창은 동학농민 전쟁의 기포지, 정부(조정)를 향해 전쟁을 선포한 곳이에요. 그런 동학의 정신은 바탕에 평화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어요. 수백만 농민군을 전장으로 이끈 힘이 바로 ‘내 가족과 평화롭게 밥 한 끼 나누고 싶다’는 평화로운 삶이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동학과 평화를 늘 함께 이야기해요. 그 생각이 깃든 작은 도서관이고, 당연히 평화와 동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을 만날 수 있고요. 이 나무 위 도서관은 영화배우 공유 씨가 화보를 찍어서 나름 유명해진 곳이기도 해요. 최근엔 KB 공익광고 희망부자 편 첫머리를 장식하기도 했지요. 이 공간과 연계한 프로그램이 ‘동학평화학교’예요. 실컷 놀면서 평화 그림책을 지어내는 여름놀이 가운데 하나이고요.
함께한 벗들도 소중한 존재예요. 지금은 세상을 떠난 《여든, 꽃》과 최근에 나온 유작 《몰라꽃》의 저자 김선순 작가가 기억에 남아요. 작가이기도 하고 마을예술가였지요. 책마을해리를 감싸는 옆 마을 주민이자 마을학교 ‘밭매다 딴짓거리’ 학생으로 근 10년을 함께한 벗이기도 해요. 글과 그림에 서툴렀지만, 재미를 붙이셔서 학교 마치고도 밤늦게까지 색 사인펜을 놓지 않았던 분이시죠. 마지막을 보낸 병실에서도 병실 사람들에게 그림 그리는 재미를 이야기하고 생의 마지막까지 그림을 그리셨으니까요. 그 재미와 함께한 시간이 참 그립고 소중하고 고마워요. 두 번째 책 《몰라꽃》은 가제본 상태로 지난 3월 이탈리아 볼로냐 어린이도서전에서 여러나라 독자, 편집자들에게 좋은 평을 받기도 했어요.
저한테 책은, 공기예요. 밥그릇 공기처럼 무엇을 담는 것이기도 하고 우리한테 없어서는 안 되는 공기이기도 해요. 없어져 봐야 그 깊은 가치를 알아차리는 존재 말이에요. 책마을해리의 책들은 더 늘고 있어요. 좋은 책을 사들이는 것도 있지만 기증을 원하시는 분들의 문의도 있고,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서 조금씩 정리하고 있어요. 아마 저 은퇴할 때까지 다 정리를 못 할 듯해요. 누군가 저처럼 유사 해리포터 말고 진짜 마법을 부리는 해리포터 책 친구가 나타나, 함께 거들어주면 정말 정말 좋겠어요.
어느덧 20년을 이 공간의 변화와 함께했어요. 저의 보스(아내이며, 버들눈도서관장)를 포함해 많은 분의 고맙고 소중한 손길이 있어 가능한 일이지요. 20년 동안 일 속에 파묻혀 있을 때는 차마 몰랐는데, 저도 참 많이 녹슬었어요. 지난 3월 책마을 청년들을 꼬셔서 참가한 이탈리아 볼로냐 그림책 북페어에서 글로벌 편집자들과 일러스트레이터들 사이에서 온전히 느꼈어요. 책마을해리 다음 세대들이 풀어나갈 이야기가 더 찬란하다는 것을요. 저는요, 책마을 한편이든 아예 바깥 어디에서 이 녹슨 생각과 몸을 흔들어 다시 제 모습 찾아볼래요. 숙명 같은 이 일, 제 첫사랑을 찾는 일일까요?
글 이대건 책마을해리 대표, 정리 편집실
사진 책마을해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