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문화재단 예술진흥국 예술지원팀 박진영
“오늘도 저에게 주어진 일 인분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려 합니다.” 인터뷰 끝에 앞으로의 포부를 묻는 퍽 난감한 질문을 던졌다. 신입사원에게나 꼭 맞는 물음이 적잖이 당황스러웠겠지만 곧 담백한 대답을 꺼내 놓는다. 그에겐 길고 깊게 간직해 온 따뜻한 소신이 있다. 늘 품어온 예술을 위한 마음은 오늘도 충실하게 이어진다.
재단 입사 전에 다양한 예술 분야의 일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하기도 하고 출판업에 종사하며 기자 일을 하기도 했어요. 미술관 큐레이터로 활동하기도 했죠. 재단에서는 올해로 4년째 일하고 있어요. 작년 말에 생긴 예술진흥국에서 새로운 업무를 맡았고요.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예술인에게도 직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 올해로 10년이 되었네요. 지금은 순수예술 활동에서 조금 멀어졌지만 학창 시절부터 꿈꾸고 동경해 오던 문화예술 분야에 계속 머물러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힘들 때마다 그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 해요.
어떤 업무를 맡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먼저, 예술진흥국은 어떤 부서인가요?
예술진흥국은 문화 활동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전문 예술인, 예술단체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일을 해요. 그 안에서 제가 속해 있는 예술지원팀은 지역 전문 예술인들이 창작 활동에 집중하여 더 수월한 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죠. 예술인과 고락을 함께하는 자세로 업무에 임하려 해요.
예술진흥국은 크게 세 가지 사업으로 이루어져 있죠.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 활동을 하나요?
지역 예술활동 지원사업, 예술인 네트워크 사업, 예술인 매칭 지원사업까지 크게 세 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예술인· 예술단체의 공연예술, 시각예술,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 활동을 지원
하고 있죠. 예술을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기반을 마련하고,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 향유 기회를 가까이 제공하고자 해요. 지원을 통해 예술인은 좀 더 안정된 기반에서 창작하고, 시민들은 작품을 좀 더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목표죠.
단순한 지원 사업을 넘어서, 다른 프로젝트도 함께 하나요?
예술인 네트워크 사업을 예로 들 수 있어요. 예술인 중심의 문화 클럽 ‘아티스트 소셜 클럽’ 운영을 통해 예술인 간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가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리고 예술인 매칭 지원사업은 카페나 독립서점, 한옥 등 일상의 공간에서 펼칠 수 있는 예술 활동을 지원하여 지역 곳곳에서 관객 친화적인 다양한 문화 행사를 기획해요.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없애고 문화 기반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죠.
사업을 자세히 살펴보면 시민들이 예술을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친근하고 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관에서 주도하는 것이 아닌, 순수예술을 기반으로 예술인들이 직접 만들어 가는 문화 행사를 지원하고자 해요. 특히 하우스 콘서트 사업은 좋은 강연이나 공연을 좀더 가까이에서 체험하는 관객 밀착형 행사로 기획했어요.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죠.
이번《화분》의 주제는 ‘집’이에요. 어쩌면 집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회사죠. 직장인으로서, 회사라는 공간에 어떤 의미를 두나요?
회사는 세상과 제가 만나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줄곧 하고 있어요.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접속 지점이며, 사적인 자아를 뒤로하고 공적인 자아를 대표로 세상을 맞이하는 장소죠. 회사엔 ‘동료애’라던가 ‘연대’ 같은 긍정적인 가치들도 있지만 어디선가 유령처럼 아득한 적들이 출몰하기도 해요. 그런 적들과 마주할 때면 김훈 작가님의 문장을 떠올려요. “파도를 옆으로 넘으려고 하면 배는 쓰러진다. 정면으로 넘어야만 비로소 파도를 넘을 수 있다.” 어떤 강연에서 작가님이 남긴 말이에요. 이런 의미에서 회사라는 공간은 저에게 늘 감당해야 하는 중력 같은 곳이지만 그 중력 덕에 제가 어디론가 날아가지 않고 땅 위에 똑바로 설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당장의 고단함을 피하기보다는 곧바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기르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거죠.
의미를 넘어 물리적인 관점에서 회사 안에서 ‘쉼’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요?
쉰다는 것은 편히 앉아 있다거나, 누워서 자는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환기하는 것이 쉼의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면, 설거지나 청소처럼 반
복적이고 육체적인 노동이 수반된 활동도 좋은 휴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저 같은 사무직은 컴퓨터 앞에 앉아 하는 일이 대부분이라 가끔씩 찾아오는 간단한 육체노동의 순간들이 즐겁게 느
껴지거든요. 컵을 닦는다든가 가습기에 물을 채우는 사소한 순간이 오히려 저에게 에너지를 주고 있어요. 그래서 탕비실은 제가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예요(웃음).
솔직한 답이네요. 회사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이 있나요?
저는 쓸모없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을 해야만 하는 생산성이 높은 공간 말고 아무런 의미와 목적이 없는 공간이요. 자꾸만 공간을 채우면서 쓰임을 두려고만 하는 건, 표면적인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창의성에서 나오는 효율성은 배제될 수 있어요. 회사에도 집의 뒤뜰처럼 ‘비움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왜일까요?
창의적인 활동은 비움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창의적인 일을 하는 곳은 천고가 높은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데요. 작더라도 텅 빈 공간이 존재한다면 스스로 목표를 세울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요. 그런 곳에서는 뭐든지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요. 오히려 쓸모 있는 공간으로 남을 수 있겠죠. 재단에서 일하기 이전에 예술인으로 살던 습관이 남았는지, 늘 창의적인 활동에 관한 열망이 있어요. 그 마음이 이런 생각의 바탕이 되는 것 같아요.
답변을 듣고 나니, 문득 책상 풍경이 궁금해지네요.
제 책상은 잘 비워져 있어요(웃음). 다 숨겨 놓거나 서랍 속에 넣어 놓았죠. 미니멀한 빈 공간과 풍경이 좋아서요.
다양한 예술 분야의 경력을 바탕으로, 재단에서 새롭게 맡고 싶은 업무가 있나요?
특정한 부서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더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시각예술을 베이스로 문화예술 관련 일을 이어왔지만, 요즘에는 공연 관련 업무도 하다 보니 조
금 안목의 폭이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처음에는 낯선 분야라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힘든 만큼 성취감도, 기대감도 커지고 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정답이 없고 기획하기 나름이라는 점을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죠.
지금에 만족하시는군요! 끝으로 지면을 통해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집’이라는 주제와 제가 어떤 연관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는데요(웃음). 사실 제 취미가 집 모양 피규어를 모으는 거예요. 이건 그걸 아는 지인에게 선물 받은 건데요, 여기에 새겨진 문장을 읽어보면, ‘A house without books is like a windowless room’, 책 없는 집은 창 없는 방과 같다는 뜻이에요. 선물 받은 것이지만 이 문장을 언제나 곁에 두려고 해요. 책을 가까이해야 내 마음의 방이 세상을 향해 열려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요. 이런 생각으로 사내 동아리 ‘책잇고’ 활동도 하고 있어요. 사람과 책을 잇는다는 의미를 가진 동아리죠. 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문장을 실현하는 일을 회사에서 동료들과 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워요. 지면을 빌린다면 이 문장 하나를 꼭 남기고 싶어요.
“송산 지역 독지리 농촌 마을에 ‘시절인연’이라는 한옥이 있어요. 하우스 콘서트 사업 관련 리서치를 하다가 발견한 곳인데요. 개인의 집이지만 영화제나 강좌 같은 문화 관련 소소한 행사가 열리기도 하는 공간이에요. 아기자기한 공간 연출을 즐기며 예술에 대해 열린 가치관을 가진 분이 주인이시죠. 공공기관에서 대규모로 공급하는 문화 행사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작고 개인적인 공간에서 진행되는 문화 행사도 의미가 있어요. 지역 문화를 하나의 생태계로 바라보면서 더 다양한 종류의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일은 중요해요. 지역 문화의 자생성과 탄력성이 더 강해질 수 있겠죠.”
글 김지수
사진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