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읍 장덕리
덩그렁 남은 바위를 보고 있으면 지금 막 섬을 한 바퀴 돌아서 나온 듯 그때 그 물 소리, 만선을 불러 오는 듯하다.
꽃길이 아닌데도 저 앞 마을의 풍경이 흔들리고 분주하던 생각들이 모여드는 봄 밤 같이 이제는 흩어지고 흩어져서 고요한 꽃길, 그 물길
화성시 남양읍 장덕리를 찾아 간다.
내가 처음 화성시 남양읍 장덕리로 발을 들여 놓으면서 눈길을 둔 곳은 매바위와 77번 국도였다. 가까운 제부도에 큰 매바위가 남아 있다는 것도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인근의 매향리 또한 나름 의무감으로 찾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가장 먼저 답사해 보았다. 이원수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홍난파의 동요 ‘고향의 봄’을 떠올리며, 가까이 이웃 마을 활초리에 있는 그의 생가도 찾아 보았다. 짧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의든 타의든 불행한 일이 더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우울한 느낌을 버릴수 없었다.
내가 만난 장덕리는 그저 평범한 시골 마을 이었다. 이곳을 찾으려면 서해안고속도로 비봉 나들목을 빠져나와 남양읍을 거치는 322번 지방도로를 자동차로 와야 한다. 지금은 도로가 여러 갈래로 복잡하게 갈라져 있어도 잘 정비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제부도를 긴 방향으로 잡고 이정표를 유심히 보지 않으면 찾아 들기가 수월하지 않았고, 장덕리로 접어드는 길은 더 어려움이 있었다. 비포장 도로를 흔들리는 자동차로 운전하여 엉금엉금 기어들기를 여러 차례, 남양천 둑을 따라 자동차로 달려야 했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깨끗한 남양천 제방을 따라 좁은 길로 접어들면 오히려 긴장감이 조금은 풀리고 느슨해져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생겼던 것이다.
조금 높은 언덕이나 구릉에는 교회며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배나무, 복숭아나무가 탐스럽게 꽃을 달고 작은 골들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꽃향기가 코 끝으로 들어올 즈음, 자동차는 벌써 77번 국도에 접어들어 있다. 도로는 높은 지형을 따라 언덕을 오르게끔 되어있어 오래잖아 시야는 멀리까지 나아가고 편안한 기분이 들면 장덕리에 접어든다.
아쉽게도 현재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밭이며 구릉들이 택지로 개발되고 아파트나 상가들이 들어차 신시가지를 형성해 있는 상전벽해.
그러나 77번 국도는 끝까지 달려가면 어느 순간 뚝, 끊어진 채 당혹감을 안겨주며 우리 앞에 나타난다.
때로는 시행착오가 생존의 논리로?
한 시대의 대세에 밀려나 사라진 포구가 장덕리의 남서쪽 끝이다. 가난과 굶주림을 면해보고자, 국토를 넓힐 목적으로 간척사업이 계획되고 시행되어 지금은 보물로 여겨지는 갯벌이 사라져 버렸다. 일명 화옹지구라 일컬어지는 습지와 그 주변으로 많은 농경지를 얻기는 했지만 그보다 값진 갯벌이 사라져 버렸다.
시행착오를 거쳐 20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숨 고르기를 하듯, 자연이 스스로 치유하듯 습지가 만들어졌다.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인 철새와 텃새들이 모여들고, 쉬어가고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생태계를 위해 습지를 보존하려는 단체들과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제적인 관심이 이곳으로 모여지고 있다.
같이 가는 먼 길, 람사르협약의 등재를 위하여
이른 아침, 서둘러 나무들로 빽빽하게 들어 찬 장덕리 매바위 주위를 선회 비행을 하듯 몇 바퀴 돌아다 보았다. 꽃향기로 만발한 봄날, 매들도 여기에서 짝을 맺고 둥지를 틀고 알을 깨고 나온 새끼들을 지금은 훈련을 시키느라 매서운 눈을 치켜뜨고, 나를 예민하게 노려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바다를 창공 삼아 날개와 꼬리깃을 활짝 펴고 자유를 만끽하듯 비행하는 매의 모습이나, 먹이를 낚아채 서둘러 둥지로 향하는 역동적인 매의 모습이나, 일순간 숨을 멎게 해 버리는 앵글 속 부리와 날카로운 발톱이 윤슬을 배경으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를 낚아채는 어찌할 수 없는 사건들을 맹금류를 쫓아 다니는 후배의 사진에서 생생하게 본 적이 있다. 후배는 간혹 화옹호 주변을 다녀간다고 했다. 그러나 많은 훌륭한 맹금류의 사진을 화옹호 주변에서 찍었다는 말은 아쉽게도 그의 입을 통해 듣지 못했다.
람사르협약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습지는 24곳이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강제적인 구속력은 없다지만 이 숫자는 그 나라 국민들이 자연을 대하는 척도나 국가적인 신임도를 느끼게 해주는 지표로도 활용된다고 한다. 서해의 여러 갯벌이 이 협약에 등재되어 있고, 각 지방 자치단체에서도 관리와 홍보를 하고 있다. 가까운 안산시 대부도 갯벌도 그 한 곳이다.
친환경이 지금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고 시대의 대세이다.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의 중간 쉼터로 이용되고 있는 화옹호. 수 많은 철새무리가 군무를 이루고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는 현재의 화옹호가 사라지지 않게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자연과 어우러진 이곳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가끔 철새들의 무리를 따르며 쉬엄쉬엄 걸어 보라 권해 보고 싶다. 장덕리를 기점으로 습지를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횡재를 하듯 매를 만날지 누가 알겠는가! 저 창공을 비행하는 해동청 보라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