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돌안돌안 인형극단
매주 화요일, 화성시서부노인복지관의 한 강의실이 북적인다. 아이 소리 듣기가 어려운 요즘, 까르르 웃고 재잘대는 아이들 풍경 앞에선 부쩍 마음이 푸근해진다. 소란한 아이들을 삽시간에 잠재우는 건 다름 아닌 무대다. 잠시의 암전 후 막이 오르자 아이들이 눈을 반짝였다. 두둥. 하나, 둘 인형이 무대에 등장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글. 최정순 사진. 배호성
좌중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돼지 가족이 집을 잘 지을 수 있겠죠?” 같은 질문엔 ‘떼창’ 마냥 “네” 합창이 이어진다. 30분 남짓한 <염소할아버지와 꿀꿀이 삼형제> 인형극이 끝나자 무대를 배경으로 아이들과의 기념 촬영이 한동안 이어졌다. 공연이 한창인 무대 뒤편에서 구슬땀을 흘리다가 인형극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진짜 주인공들. 화성시서부노인복지관의 노인 전문 자원봉사단 ‘돌안돌안 인형극단’은 2022년 5월 창단, 현재 14명의 단원이 활동 중이다. 극단은 A , B팀으로 나누어져 운영되는데, 불가피한 결원 발생 시 대체 인력으로 공연 할 수 있도록 고안한 시스템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지역 아동을 관객으로 모시고 인형극을 선보인다. 기본적으로는 매주 공연과 연습을 포함한 자조 모임 형태로 진행 되며, 연습과 공연 일정 등에 맞춰 공연 프로그램이 바뀐다. 기존의 인형극에 젠더 감수성을 더하는 등 변화하는 시대와 사회, 어린 관객에 걸맞은 공연 프로그램의 다양화를 시도하고 있다. 돌안돌안 인형극단에 대한 입소문이 난 요즘은 지역 내 어린이집, 유치원, 아동센터 등지에서 관람 신청이 쇄도해 연말까지 공연 일정이 가득 차 있을 정도다. 돌안돌안 인형극단의 정해월 단장은 극단의 흥하는 이유이자 팀워크의 비결로 단연코 ‘이해심’ 을 꼽았다.
“공연이나 연습할 때 발생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자체 평가 등 의견을 나눌 때가 많아요.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만큼 대화뿐 아니라 관계에서 중요한 건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에요.
거기엔 팀을 위한 시간을 지키겠다는 책임감이 담겨 있어요.”
2022년 5월, 돌안돌안 인형극단의 첫 번째 공연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다. 그날을 회상하는 정해월 단장에게 벌써 웃음이 인다.
“다섯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의 리액션에 그냥 놀라버렸어요.
환호하는 모습에 가슴이 막 뛰더군요.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면서 무대만 봐요.
함성소리가 들리는 중에 우리는 오래 연습했던 인형극을 하고 있고. 다시 생각해도 참 뭉클해요.”
창단 멤버인 장미숙 단원에게도 그때가 또렷하긴 마찬가지다.
“공연 준비에 1년 정도 걸렸어요. 독학하다시피 극단 사람들끼리 연습하다가 좋은 강사를 만났어요.
그이가 지역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돌안돌안 인형극단에 대한 광고를 해줬고, 시립어린이집, 시청어린이집 등지의 아이들을 초대해 공연을 했어요.
음식 만들기 수업하고 감자떡을 쪄 왔더라고요. 아이들이 만든 떡에 사랑한다, 고맙다는 메시지를 써서 우리에게 줬어요.
얼마나 마음이 예뻐요. 잊지 못할 감동이에요.”
이병익 단원 역시 첫 공연의 감격이 꾸준한 활동의 계기가 됐다고 전한다.
“화성시서부노인복지관을 다니다 보면 어르신이 100% 받기만 하는 입장이에요.
복지관에서 배운 가치 중 하나가 ‘선배 시민’인데, 시니어의 인형극이 지역사회와 지역 주민들에게 베풀 수 있는 인생 선배의 활동이 될 수 있겠더라고요.
인형극을 보는 아이들이 리액션할 때 쾌감이 있어요. 어찌나 집중해서 보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인형극을 통해 노인 공경, 양성 평등 등의 가치를 담아 전하려고 합니다.
연습과 공연 체계를 갖추면서 어린이집은 물론 노인 등 지역 소외계층으로 서비스 대상을 확대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해부터는 단장 제도를 도입해 내부적으로 원칙과 규율을 정해 운영하고 있어요.
극단 운영을 복지관에서 전담한다면 나이차가 나는 단원들과 소통하기가 쉽지 않을 거란 말이죠. 이제 리더가 있으니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이뤄져요.
정해월 단장은 물론 복지관에서 애를 많이 써준 덕분입니다.”
돌안돌안 인형극단의 시작은 화성시서부노인복지관의 제안이었다. 인형극단 모집 안내 메시지를 받고 삼삼오오 모인 데서 현재에 이르렀다. 복지관에서 인형, 대본 등을 지원 받아 공연을 위한 기본을 갖췄고, 매주 모여 독학하듯 연습했다. 지금 같은 인력이나 무대 장치,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을뿐더러 홍보가 전무했으니 극단의 일정 대부분은 연습이었다. 공연은커녕 적지 않은 시간 이렇다할 활동이 없었는데, 혹 낙담하거나 실망할 때는 없었는지 정해월 단장에게 물었다.
“지치지 않았어요. 좋아서 하는 거니까요. 하고 싶으니까, 즐거우니까, 그런 맘으로 모였어요.
만약 강요에 따른 것이었다면 달랐겠지만. 극단 생활하는 동안 적잖은 사람이 드나들었어요.
그럼에도 저와 부단장 등 창단 멤버 넷이 굳건히 버티고 지켰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버팀목이 되는 좋은 단원, 훌륭한 동료가 있다는 사실은 극단에게도 긍지가 돼요.”
한 사람의 시민으로, 인생 선배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삶의 지혜와 사람에 대한 애정, 그동안 누렸던 혜택을 환원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모임에 참여 하는 이가 늘고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 또한 똘똘 뭉쳐 단단해졌다. 지난해 돌안돌안 인형극단은 요양원 봉사에 나섰다. 몸이 성치 않은 이들이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호응하면서 인형극 보는 즐거움을 전해주었던 그들 덕분에 봉사의 보람과 기쁨을 누렸다. 매주 화요일 오전 9시부터 인형극 연습과 공연 봉사활동이 진행되는데, 연습 내용은 더빙된 목소리에 입, 팔과 다리 등 동작을 맞추는 대본 연습을 비롯해 시나리오 구상, 대본 녹음, 소품 제작 등 다양한 활동을 포함한다. 그래서 돌안돌안 인형극단에게 기본 중의 기본은 연습이라는 공동의 약속이다. 약속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활동할 동료를 기다리며, 단원은 수시 모집 중이다.
자원봉사에 대한 의지가 있는 복지관 회원,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과 봉사에 대한 열정, 타인과의 협동과 소통 능력, 꾸준한 참여와 학습 의지 등이 조건이다.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인형극인 만큼 돌안돌안 인형극단이 공연에 담고자 하는 가치와 메시지는 ‘노인 공경’과 ‘세대 간 이해와 공감’이다. 저출생 시대를 맞아 지금의 인형극을 통해 아이들이 어른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다른 세대 간 소통하는 방식과 서로에 대한 이해의 바탕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돌안돌안 인형 극단의 목표다. 첫 번째 인형극에서 본 아이들의 집중한 눈빛, 이야기에 빠져든 몸짓과 목소리가 단원들에게 감동의 기억으로 새겨졌듯 인형이 들려준 이야기와 무대 뒤편에서 흘린 인생 선배의 굵은 땀방울은 미래 주역에게 어떤 추억을 남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