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가 박준범
공간의 변화를 압축적인 시선으로 담아 영상 작품으로 표현하는 박준범은 도시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면면을 포착한다. 박준범은 5월 가정의 달 기획전 <마법의 순간, 자라나는 상상>을 통해 화성시에서 관람객과 함께할 마법 같은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글 차예지 사진 김성재(싸우나스튜디오), 작품 사진 박준범 제공
<마법의 순간, 자라나는 상상> 전시 정보
빨리 감기 해놓은 영상 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땅에 골격이 세워지고, 벽이 생기고, 지붕이 올라간다. 눈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날에도 계속해서 지어지는 건물을 보고 있노라면 아주 일상적인 그 과정이 새삼 마법같이 느껴진다. 박준범 작가의 <마름모 또는 평행사변형>을 보고 든 감상이다.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 시간을 먹고 자란 건물 속에서 우리가 산다. 그곳은 비었다 찼다를 반복하며 허물어지고 새로 지어진다. 어느 먼 곳에서 이런 우리를 누군가가 바라본다면 어떨까. 픽셀처럼 작디작은 사각형 속에서 수만 가지의 삶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들여다본다면.
박준범의 작품은 때로 그 절대자의 시선에서, 또는 제3의 관찰자 시선에서 우리를 훔쳐본다. 직부감(high angle: 높은 위치에서 피사체를 내려다보며 촬영하는 것)을 통해 공간의 변화를 바라보고 시간을 되짚는다.
향남이 신도시잖아요. 한 20년 동안 급격한 환경의 변화를 겪은 지역이죠. 그 향남 신도시를 만들기 위한 과정들을 구글 어스(Google Earth) 타임랩스 기능으로 볼 수 있었어요. 그 과정을 작품으로 담으면 마치 역사박물관에서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를 스케치하듯 보여주는, 그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서 시작했어요. 그리고 제가 살고 있거나 관련 있는 도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거리감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바라본 것도 있었고요.
제가 지도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어요. 외국에 가거나 지방에 가면 여행자용 지도가 있잖아요. 맛집만 모아놓은 것도 있고 추천코스를 모아둔 것도 있고. 그런 지도는 아주 주관적인 관점이 담긴 것이고 어떤 지도들은 아주 객관적이기도 해요. 그런 걸 수집해서 비교해보는 걸 좋아해요. <향남읍 부감> 전시 작업도 그래서 재밌게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태어난 곳보다는 살았던 방법이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저는 한 집에 2년 이상 살아본 적이 없어요. 헤아려보니 결혼하기 전까지 스무 번이 넘게 사는 곳을 옮겨다녔더라고요. 사실 지금 이 작업실에 온 지도 한 달 남짓이라 짐 정리가 하나도 안 돼 있어요. 제 꿈이 모든 짐을 다 뜯어서 순서대로, 크기대로 쫙 늘어놓고 정리를 싹 해보는 거거든요. 집을 계속 옮겨 다니며 자란 환경이 공간을 바라보는 제 관점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저는 항상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난 이후에도 잘 작용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제가 죽고 나서도 작품은 남을 텐데, 이 작품이 어떤 성격으로 남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예술과 대중이 소통할 수 있는 전시잖아요. 이번 전시로 관객과 소통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작품 스스로 작용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예술이라는 언어에는 상징과 은유가 있고 아주 복합적이잖아요. 말이나 글이 아닌 그것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한다는 의미죠.
제가 작업을 시작한 건 아주 개인적인, 종교적인 신념이라든지 우울감 같은 감정에서 출발했지만 결과물로 나온 작품들은 유머러스한 점을 갖고 있어요. ‘패러디의 쾌감’이라고 하죠. 그 유쾌함을 어른과 아이 모두 다채롭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 작품이 1인칭 관찰자 시점이나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주로 진행되는데요. 어떤 분들은 이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좀 더 사회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주시기도 하지만 어떤 분들은 그냥 이 모양 자체를 즐기시거든요. 저는 그렇게 보시는 것도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예술의 재미있는 지점들, 조작하고 편집하고 콜라주 하는 과정들을 재미있게 봐주시면 좋겠어요.
제 작품 <To let>을 기반으로 콜라주 작품을 같이 만들어 볼 거예요. 건물 사진 위에 다양한 간판 사진을 편집해서 붙인 작품인데요. 이게 하나의 공간처럼 보이려면 간판과 건물의 기울기가 맞아야 하고 크기와 비율도 고려해야 하죠. 시각 예술의 맛이 살아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작업을 같이 하면서 종이의 질감과 작품 안에서의 시점과 공간감 등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동탄에 있는 건물을 가지고 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아파트라던가.
이 전시 같은 경우에는 보는 이들의 관점이 좀 더 마법에 가까울 것 같아요. 내 작업을 누군가는 흥미를 가지고 재밌게 바라보는구나, 반면 누구는 아무 관심이 없구나.(웃음) 그런 걸 보면 정말 마법 같죠. 똑같은 것을 보면서도 관람객마다 느끼는 것이 다 다른 게 마법 같은 순간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은 디지털이 너무 많이 발달했고 AI가 많은 걸 하는 시대죠. 데이터를 주면 변해가는 풍경을 자동으로 생산해낼 수 있잖아요. 근데 우리는 어떻게 보면 아날로그라는 핸디캡을 즐기는 것 같아요. 이런 시도가 계속 존재하고 그걸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역으로 디지털이 발전하기 때문이죠. ‘자동화되는 기술이 세상을 구현해낼 수 있다, 그럼 현대미술이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까’를 묻잖아요. 그럴 때 이야기하는 거죠. ‘이런 현상을 비판하기 위해 남는다.’ 제 작업이 그걸 대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은 주는 것 같아요.
그 작품들은 그 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개별적인 정서를 보려고 한 작품은 아니었죠. 인간이 어떤 사회,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바라보기 위해 만든 거예요. 어떤 사람은 좀 나태하고, 어떤 사람은 되게 자유롭고, 어떤 사람은 적극적이라서 다른 사람들을 끌어당겨 보기도 하고요. <대피소 리허설> 같은 경우는 ‘20명 정원의 대피소에 50명이 30일간 외부와 격리되어 거주하기’라는 조건을 설정하고, 만일 이런 상황이 펼쳐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움직일까를 생각해 보고자 한 작품이었죠.
예를 들어 전쟁터에서 자란 아이들이라면 그 아이들의 장난감은 어디 굴러다니는 불발탄이 될 거예요. 그걸 가지고 반지도 만들고 자기들끼리 가지고 놀겠죠. 놀다 보면 손을 다칠지언정, 그냥 그게 당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도시에 살고 있잖아요. 그러니 그런 환경에 대해 얘기할 수밖에 없겠죠. 예를 들면 아름다운 호수공원이 있는데, 그 호수의 밑바닥이 알고 보면 시멘트인 그런 곳. 저는 그걸 ‘멸균’ 상태라고 이야기하곤 해요.
제가 준비 중인 다음 전시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는데요. 모방, 회피, 표시 세 단어로 만든 어떤 이야기인데 멸균에 가까울 정도로 보수적인 태도에 대한 거예요. 우리가 버스를 기다린다고 치면 스마트폰으로 다음 버스가 몇 분 후에 올지 다 알잖아요. 그걸 더는 회피할 수 없는 시대인 거죠. 제가 몇 년 전에 인도에서 살았었는데 거기서는 오기로 한 기차가 오늘 아예 안 올 수도 있어요. 그러면 플랫폼에서 자든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근데 우리나라는 그렇게 못 하죠. 그렇게 되면 기차를 기다린 시간을 다 따져서 돈으로 보상받든가 해야 할 거예요. 이게 멸균에 가까운 세상이라고 보는 거예요. 아직 구체화하지는 않았는데 그런 걸 바라보는 작업을 구상 중이에요.
아뇨, 그렇다기보다는 그 상태를 체에 올려서 걸러 보는 거죠. 그러면 그런 여러 사회의 공통점들이 있을 거고, 그게 주르륵 흘러 내려가면 우리 사회만의 어떤 것이 체 위에 남지 않을까….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닌 상태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해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다룰 때 어떻게 객관적으로 담을까 고민하는 게 가장 중요하듯 저도 어떻게 현재를 객관적으로 캡처할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회화와 조각을 주로 하는 노상준 작가와 ‘SJB PICTURES’라는 이름으로 그룹을 만들어 같이 작업하고 있어요. 그간은 혼자만의 미묘한 감정을 담은 작품을 주로 만들면서 그 뒤에 숨어가면서 작업해 왔는데요. 이제는 내가 좀 창피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것 같은 이야기를 공동 작업을 통해 해요. 함께하는 사람이 있기에 서로의 뒤에 숨을 수 있는 거죠. 이 작업 같은 경우는 재난과 참사, 사람들이 야기할 수 있는 어떤 극단적인 치달음에 대해 말해요. 이게 지금으로서는 저에게 가장 큰 도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