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공간+] <마주페스타>
예술을 처음 접하는 순간은 중요하다. 처음으로 간 전시, 처음으로 본 공연, 처음 만들어 본 작품이 예술에 대한 이미지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7월의 어느 화창한 주말, 화성시 우정읍 민들레연극마을을 찾은 아이들은 색다른 예술을 처음 경험했다.
뛰어놀고, 만지고, 가까이서 느끼는 예술이었다.
글 차예지 사진 이대원(싸우나스튜디오)
민들레연극마을은 화성시문화관광재단의 2025년 일상 예술활동 지원사업 [자유공간+]의 일환으로 운영되는 작은 예술 마을이다. 전통을 바탕으로 한 창작극을 선보이는 극단 민들레가 아이들을 위한 연극, 극 연계 체험 활동을 진행한다. 극단 민들레의 운영 이념인 소파 방정환의 어린이선언을 들여다보자. 1923년 어린이선언 ‘어른에게 드리는 글’에 따르면 방정환은 어린이를 늘 가까이하고 자주 이야기를 해줄 것, 산보(산책)와 원족(소풍)을 가끔 시켜줄 것, 어린이들이 모여 놀 만한 놀이터나 기관을 지어줄 것을 강조했다.
민들레연극마을의 <마주페스타>는 어린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연극으로 들려주고, 정신없는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마을로 떠나는 소풍을 제안한다. 이곳은 알록달록한 색과 시끄러운 음악으로 가득한 어린이용 실내공간이 아닌, 풀벌레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하고 하늘을 지붕 삼아 누울 수 있는 곳이다.
오늘 <마주페스타>를 찾은 아이 중에는 연극을 처음 경험하는 아이도 있는 듯했다. 줄을 지어 공연장안으로 들어온 아이들의 눈은, 어두컴컴한 실내에서도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대형 스크린의 매끈하고 화려한 영상미에 더 익숙할 이들이지만 소박한 공연장은 연극 속 이야기에 더 깊이 빠져들 법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극의 연출과 공연을 맡고 있는 극단 민들레의 송인현 대표가 나타났다. 연극을 처음 보는 아이들도 많기에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일부터 시작한다. 아이들의 세상에는 처음 겪어보는 일투성이다. 지금부터 무엇을 할 건지, 어떻게 느끼면 좋은지 알려주는 일은 또 다른 세계로의 안내 지도와 같다.
민들레연극마을에서는 <꼬마공룡 플라톱스>, <남복이 차복이>, <까만 닭> 등 창작극이 펼쳐진다. 그중 <까만 닭>은 마을 주변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토대로 구성한 연극이다. 노란 병아리들 사이 혼자만 까맣게 태어난 주인공은 형제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그러다 누군가가 유기한 짖지 못하는 개, 우유를 많이 생산하기 위한 주사를 맞고 이상행동을 하는 젖소와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받게 된다.
연극은 송인현 대표가 각 캐릭터의 모형을 들고 연기하며 진행된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분무기에 색을 칠해 닭 모형을 만들고, 신발에 털목도리를 붙여 개를 표현했다. 얼룩무늬를 그려 넣고 경적 두 개를 눈처럼 붙인 자전거는 젖소다.
송 대표가 큰 소리로 “꼬끼오!”를 외치며 극이 시작되었다. “닭이다! 저거 치킨 만들어버리는 거 아니야?” 한 아이의 순수하지만 씁쓸한 질문이 들렸다. 어린이들에게 닭은 생명체보단 식재료에 더 가까운 것.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아이들은 까만 병아리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였다. 어느새 객석 바닥으로 내려와 무대에 집중하고, 극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까만 닭>은 도시와 자본주의 속에서 생태계의 자연스러움과 다양성이 사라지고, 자연마저도 인간 중심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세태를 담은 이야기다.
아직 어리기에 극의 내용을 100%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스팔트 바닥이 아닌 마을의 잔디밭을 뛰어놀며, 풀 속에 사는 곤충들을 관찰하다보면 무언가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조금은 느끼지 않을까.
이후에는 극 연계 활동인 만들기 체험과 전통놀이 체험이 이어졌다. 연극의 소품이 일상용품을 재활용해 만든 만큼 아이들도 일상용품으로 자기만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채소를 활용한 소품이 등장하는 극을 선보일 때는 애호박 등 채소로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고.
캐릭터에 이름을 지어주고 둘러 모여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다. 각자 만든 물건을 소개하며 거기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과정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유자재로 늘어났다 줄어드는 파이프를 이용한 상상 수업도 진행됐다. 파이프를 들고 특정 상황을 연기해 정답을 유추해보는 수업인데, 한 아이는 파이프를 길게 연결해 구불구불 흔들었고(정답은 ‘뱀’이었다) 다른 아이는 파이프를 손에 쥐고 바닥으로 늘어뜨리곤 허리를 구부정하게 걸었다(정답은 ‘할머니’). 연극의 기본인 표현력을 기를 수 있는 수업이다.
민들레연극마을은 넓은 잔디밭과 극장,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 실내와 야외무대로 이루어져 있다. 야외무대로 자리를 옮긴 아이들에게 기다란 흰 천이 쥐어졌다. 전통춤을 출 때 손목에 끼우는 천인 ‘한삼’이다. 팔을 움직이는대로 공중에 한삼이 살랑살랑 날리며 춤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연극 속 움직임을 전통춤에 녹여낸 수업이다. 아이들은 강사를 따라 다리를 들며 한삼을 낀 팔을 흔들고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타 연주 소리와 함께 연극에 나왔던 캐릭터들을 되짚어보며 그들의 움직임을 춤으로 승화 시킨다. 나무 그늘 아래 야외 무대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뛰며 춤을 췄다. 아이들은 뛰면 웃는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환히 웃으며 춤을 추는 아이들을 보니 더위가 가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날은 지역 주민들로 이루어진 공연단이 난타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의상까지 멋지게 갖춰 입은 주민들이 신나는 노래에 맞춰 북을 두드렸다. 한여름의 열정을 닮은 멋진 호흡이었다. 주민들은 아이들에게 공간만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마주페스타>를 함께 즐기고 있었다.
우정읍 주민들에게는 마을잔치 같은 하루를, 아이들에게는 예술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을 선사하는 민들레연극마을. 모두에게 무해한 예술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화성시 곳곳에서 만나는 일상예술활동 프로젝트
[자유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