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에 어쩐지 위축되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잠깐 휴식을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왕이면 뜨끈한 가마 속에 앉아 땀을 흘려보는 것도 좋다.
몸에도 좋고 마음에도 좋은, 온천으로 떠나보는 하루.
글 차예지(편집실) 사진 이대원(싸우나스튜디오)

동탄에서 차로 약 40분, 보통저수지를 지나 달려 도착한 화성시 팔탄면. 레트로한 간판이 맞이하는 율암온천은 한눈에도 긴 역사를 간직한 듯 보였다. 한편에 마련된 널찍한 주차타워가 방문객의 수를 가늠하게 했고, 건물 앞에서 칡차와 옥수수빵을 팔고 있는 간이 판매점에서는 정겨운 옛날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전면 유리인 벽면을 따라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휴게공간이 있고, 1층에는 식당과 카페, 오락실이 있었다. 만일 ‘찜질방 감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풍경에 반가운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2000년대 초 찜질방이 유행하던 시절 안에서 찜질과 식사, 놀이까지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하던 그때 그 시절 감성 그대로였다. 오락기의 성능만 조금 좋아졌을 뿐. 화려한 외관이나 신식 인테리어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이 오히려 온천수의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아닐는지.
로비 가운데를 둥그렇게 비워둔 나선형 동선의 길을 따라 오른다. 진지한 궁서체로 써진 온천수의 효능, 율암온천의 시작을 알리는 용출수 사진 등을 구경하다 보면 2층에 위치한 카운터가 나온다. 율암온천은 수도권 남부에서 최초로 온천 허가를 받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카운터에도 ‘화성시 허가 제1호’라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문이 크게 붙어있었다.

2005년 발간된 『화성시사』에 따르면 예로부터 율암온천 뒤편에 있는 작은 온천에서 자연 용출수가 사계절 흘러내렸는데, 이 물은 한겨울에도 얼지 않아 인근 주민들이 빨래터로 이용했다고 한다. 또한 그 물은 피부병, 각종 성인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고 한다.
율암온천은 1996년에 이 지역에서 용출된 온천수로부터 시작돼 2000년 7월에 정식으로 온천 허가를 받아 문을 열었다. 2000년도라면 화성시가 아직 시 승격 전의 ‘화성군’이던 시절이니, 온천이 이 지역의 역사를 품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율암온천의 온천수는 지하 700m에서 자연적으로 용출된 약알칼리성 물로, PH 9.46의 높은 알칼리성을 띤다. 전문용어는 몰라도 물을 만져보면 뭔가 다르다는 건 알 수 있다. 이곳의 물은 부드럽고 미끌거리는 촉감이 특징이다. 처음 찾는 방문객들은 이 미끄덩거리는 물에 적응을 어려워하기도 하지만, 묘한 중독성이 있어 ‘믿고 찾는다’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실내 목욕탕 안에는 노천탕이 있어 요즘 같은 겨울철에 특히 즐기기 좋다. 머리 위로 스치는 쌀쌀한 공기를 느끼며 몸은 따뜻한 온천수에 맡기면 겨울 온천의 묘미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좋은 건 모두가 알아보는 법이라, 노천탕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율암온천을 찾았다면 참숯가마에서의 찜질 체험을 빼놓을 수 없다. ‘참숯’은 말 그대로 참나무를 검게 구워 만든 것을 뜻한다. 이곳에선 참나무를 공수해 직접 숯을 만들고 그 열기로 찜질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실내에서 참숯가마로 향하는 길을 따라 야외로 나가면 어느덧 연기 냄새가 솔솔 올라와 몸을 감싼다. 온천이 문을 열기 시작한 즈음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25년 경력의 직원이 우리의 취재에 함께해주어, 참숯가마에 쓰이는 참나무가 가득 쌓인 야외 창고도 구경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나무들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이들을 기계에 넣고 태우면 열이 약 일주일간 유지되는데, 처음에는 숯의 온도가 아주 높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온도가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 초고온실, 고온실, 중온실, 저온실 등으로 나눠진 공간에서 찜질을 할 수 있는 것. 오늘의 초고온실이 내일은 고온실로, 오늘의 고온실이 내일의 중온실로 이름을 바꿔 달며 손님을 맞는다.
가마 한쪽에 붙은 주의문에는 “숯가마에 누워있지 마세요! 황토 부스러기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있었는데, 어쩐지 그 말이 귀엽게 느껴졌다. 잠시 막을 열어 찜질을 체험해 보니 열찔이(?)인 에디터는 중온실만 해도 숨이 턱 막혀 안에 눕는 것은 꿈도 못 꿀 것 같았다.
찜질을 위해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각 방에서 땀을 쭉 뺀 뒤 휴게실에서 쉬거나 한편에 마련된 식당을 찾기도 한다. 식당에서는 생선구이 같은 한식부터 뜨거운 이곳과 어울리는 삼겹살도 판매하고 있다.
각각의 가마 앞에 놓인 평상에 방문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구운 달걀이나 고구마, 식혜 같은 주전부리를 나눠 먹는 모습이 보였다. 고구마의 출처는 참숯가마 한편에 위치한 ‘고구마굼터’다. 고구마, 감자, 호박을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는 기계가 마련돼있는데, 재료는 휴게실에서 구매도 가능하고 집에서 직접 가져와도 된다.
숯 냄새도 좋지만, 뜨끈한 고구마에서 올라오는 단 향도 좋다. 느릿하게 구운 고구마를 입에 넣으면 달큰한 맛이 밀려오고, 숯가마에서 뺀 땀이 마르기도 전에 속까지 따뜻하게 데워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요즘 스파나 찜질방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풍경이라 더 정겹게 다가왔다. 고구마굼터에서 쓰는 장작 또한 숯을 만드는 참나무 자투리를 활용한 것이라고.


율암온천의 또 다른 인기 공간은 온천수를 이용한 야외 족욕장이다. 이 물에는 목초액이 섞여 있어 특유의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근 채 편안히 앉아 쉬고 있는 방문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노천탕은 탕 내에 있어 개별적이지만 이곳 야외 족욕장은 실외라 가족이나 커플 등이 함께 족욕을 즐길 수 있다.
또 야외 공간에는 곳곳에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있다. 등나무가 가득 올라간 차양과 낡은 흔들 그네가 있는, 시골집에서 직접 가꾼 소박한 정원을 연상시킨다. 온천탕뿐 아니라 참숯가마와 야외 공간까지 각기 다른 매력이 있는 이곳은 세련되고 화려한 시설로 눈을 사로잡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편안함과 쉼이 있다. 몸과 마음을 돌보는, 온천이라는 공간의 본질을 가장 잘 담아내는 곳이라는 인상을 준다.
율암온천은 수도권 어디서든 접근하기 비교적 쉬운 편이다. 가까운 곳에 온천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게 방문객을 모으는 또 하나의 비결일 듯하다. 율암온천 김치목 대표에 따르면 이곳의 한 해 방문객은 수십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평일에도 방문객이 꽤 많은 편이며 주말과 휴일에는 인파가 더욱 몰린다. 조금이라도 여유롭게 온천과 찜질을 즐기고 싶다면 평일 오전 시간을 노려보면 좋을 것이다.
율암온천은 젊은 세대에게는 노천탕과 옛날 숯가마 방식을 체험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온전한 휴식을 선사하는 곳이다. 무엇보다 쌀쌀한 날씨에 온천욕이라니, 이보다 매력적인 경험이 또 있을까.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아마도 이유는 복잡하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어서’ 정도의 이유일지라도, 이곳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율암온천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온천로 434-14
031-354-7400
영업시간
6:00~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