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리의 소리를 본다 展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비우는 것이 중요한 순간이 있다. 작품을 바라본다는 것은 내가 직면한 순간에서 한 발짝 물러나, 곤두서 있던 온몸의 신경에 힘을 살짝 뺀 뒤, 멈춰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가와 내가 마주치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 최소리 작가 노트
한바탕 홍수로 인해 섬진강이 범람하고 온 대지가 뒤흔들렸던 지난여름, 하동문화예술회관 <최소리의 소리를 본다 展>의 모니터를 위해 왕복 10시간의 여정에 올랐던 적이 있다. 하동역 밖으로 펼쳐진 쨍한 날씨와 태평스레 흐르는 섬진강의 물줄기는 불과 얼마 전 대지의 두드림으로 모두를 집어삼켰던 거인의 천둥 같은 외침이 아닌 고요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고요는 하동의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산산이 깨부수어졌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소리인지도 알 수 없는 울림의 파장들이 합쳐져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 그 찰나, 나는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작가와 직면했다. 파장과 파장 사이에 갇혀 버린 듯한 그 정적. 끊임없는 진동과 고요의 반복.
최소리 작가는 2007년 <최소리의 소리를 본다 展>를 개최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소리를 본다’라는 주제로 ‘나’의 소리, ‘우리’의 소리, ‘세상’의 소리를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물체와 에너지는 고유한 소리를 갖고 있다.’는 작가의 표현은 시리즈 전시를 포함해 작가 자신의 예술 활동과 작품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그룹 백두산의 전 멤버이자 전 세계 200여 개 도시에서 연주한 타악 솔리스트이기도 한 그는 ‘두드림’을 이용한 강렬한 퍼포먼스와 작품을 연결해 알루미늄판, 동판, 황동판, 종이, 캔버스 등을 연주하는 것을 비롯해 채색, 부식, 그라인딩 등의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미술평론가인 박영택 경기대 교수는 최소리 작가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동안 금속(드럼)과 천의 피부(북)에서 다양한 소리를 뽑아낸 최소리는 아예 금속과 천의 표면 그 자체에 다양한 표정, 질감을 적극적으로 시술해 놓았다.” 또한 작가의 활동에 대해서는 “자신의 신체와 스틱 및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사각형의 평면 전체를 공략하면서 특정 지점을 타격해서 구멍을 내거나 스크래치를 발생시킴으로써 평면은 부조나 입체적 효과로 환생하면서 회화이자 동시에 요철 효과로 자글거리는 일종의 조각이 됐다.”고 평가했다. 즉, <최소리의 소리를 본다 展>는 세계적인 타악 솔리스트이자 뮤지션이자 화가인 최소리 작가가 평생 음악으로 전달하던 소리에 대한 탐구를 미술의 영역으로 옮겨낸 실험적인 미술창작 전시인 것이다. 두드림은 진동으로 주위를 흔들고, 그 두드림이 예측할 수 없는 또 다른 형태로 탄생한다. 그 탄생의 정적 속에서 또 다른 나의 소리를 마주하는 시간을 화성시생활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이 전시를 통해 느껴보았다.
그가 음악에 드럼을 치듯이 리듬에 맞춰 철판을 향해 내리치는 모든 행위들은 예술의 표현형식을 완전히 해체한 전위적인 형태의 새로운 창작 행위이다. 마치 플럭서스 운동처럼 다이내믹한 요소를 철판 위에 각인시키는 행위는 전통적 미학에서의 조형미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미술까지 한 번에 제시한 것처럼 독자적이다. 즉, 최소리는 2차원에서 논의되던 관념적 세계를 평면으로 표현하면서 구호에 그쳤던 음악과 미술의 만남을 현실적인 3차원 공간 안에 구축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해석된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
작가 최소리는 즐겁고 행복한 ‘樂’의 정신적 상태와 어깨춤이라도 덩실거릴 육체적 ‘興’에 취하는 신명에서 파생된 樂&興이라는 우리 고유의 미의식을 지닌 초유의 무인입니다. (중략) 그의 예술적 욕망의 본질과 근원은 예술 장르에 상관없이 동일하며, 다만 구현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 장현근, 에코락갤러리·에코캐피탈 대표이사
글 박현진(지역문화팀)
그림 제공 아트인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