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문화관광재단이 기획한 1박 2일 프로그램
어떤 여행은 단순히 공간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서사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번 화성 여행은
화성시문화관광재단이 기획한 1박 2일 프로그램으로,
조선의 왕이 걸었던 효(孝)의 길과 고즈넉한 산사의 밤,
그리고 신명 나는 전통 공연까지 유기적으로 이어졌다.
역사와 예술이 하나의 호흡으로 맞물린 여정 속에서,
우리는 화성이 품은 진짜 이야기를 마주하고 있었다.
글 백미희(편집실) 사진 김경수(싸우나스튜디오)

초여름 녹음이 짙게 내려앉은 오후, 여행자들이 향한 곳은 융건릉이었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융릉, 정조대왕과 효의왕후의 건릉이 나란히 자리한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조선 왕실의 ‘효(孝)’ 사상이 깃든 대표적 공간이다.
피톤치드 향이 감도는 솔숲길에서 시작된 도슨트 투어. 교과서적인 설명 대신, 왕실 장례 절차에 쓰인 석빙고 이야기와 궁중에서의 미역 활용 등 흥미로운 야사가 이어졌다.
“과연 왕의 마지막 길에는 무엇이 가장 필요했을까요?”
해설사의 질문에 참가자들은 소풍 온 아이들처럼 활기차게 답을 내놓았다.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능침을 차례로 돌며 이어진 설명에 사람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의 즐거움과 역사적 이해가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순간이었다.
친한 지인의 추천으로 어머니와 함께 참여했다는 심혜연 씨 역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정조대왕에 관심이 생겼어요. 행궁동은 자주 찾았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듣게 될 줄은 몰랐죠. 융건릉이 쌍릉이라는 사실이나 혜경궁 홍씨의 이야기까지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됐어요.”
그의 말처럼, 이름만 알고 스쳐 지나가던 도시는 해설사의 목소리를 통해 입체적인 이야기로 되살아났고, 여행자들의 기억 속에 또렷하게 각인되고 있었다.


융건릉이 품은 서사의 묵직한 감동을 채우고 이동한 다음 행선지는 용주사였다. 이곳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정성을 다해 세운 왕실 원찰이다. 왕릉을 수호하고 망자의 넋을 기리는 사찰인 만큼, 입구에 궁궐 양식의 홍살문이 서 있는 등 일반 사찰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건축 구조가 특징이다.
고즈넉한 산사에 들어선 참가자들은 먼저 템플스테이의 백미인 염주 만들기 체험에 나섰다. 가느다란 실에 작은 구슬 108개를 한 알 한 알 꿰어 나가는 과정은 보기와 달리 높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사락거리는 소리만 잔잔히 흐르는 방 안,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소망을 담아 구슬을 실에 꿰어 나갔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부드러운 나무의 온기는 복잡했던 일상의 소음과 잡념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정성스레 매듭을 지어 단 하나뿐인 염주를 만들어 목에 건 이들의 얼굴에는 이내 뿌듯함이 차올랐다.
참가자 박영근 씨는 이번 화성 여행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으로 ‘종교적 체험’을 꼽았다.
“불교는 아니지만 평소에 템플스테이에 관심이 있었어요. 여행 카페를 운영할 정도로 수많은 국내외 여행 경험이 있지만 템플스테이는 해본 적이 없거든요. 이렇게 염주를 만드는 과정도 신기하고 내일 남양성모성지 투어도 기대하고 있어요.”
이어진 용주사 관람에서도 도슨트의 해설은 깊이를 더했다. 삼문과 천보루, 부모은중경탑에 대한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감탄이 흘렀다. 대웅보전 앞마당의 오층석탑과 범종각을 지나며 참가자들의 발걸음은 한층 차분해졌다. 산사의 고요한 공기와 청량한 바람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고, 그 안에서 진정한 쉼이 완성되고 있었다.



저녁 공양을 마친 뒤, 일행은 화성예술의전당 동탄아트홀로 향했다. 첫날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전통 연희 공연 <연희-판 ‘흥으로 잇는 세상’>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사물놀이, 탈춤, 사자춤, 줄타기 등 전통 연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무대가 펼쳐졌다.
공연이 시작되자 사물놀이의 강렬한 장단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역동적이면서도 해학적인 사자춤이 무대를 누비자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특히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아슬아슬하고 재치 넘치는 줄타기의 묘미가 펼쳐질 때는 무대와 객석이 하나로 어우러지며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여행자들은 어느새 화성이 가진 다채로운 문화적 에너지에 동화되고 있었다.
수많은 국내외 여행을 다녀왔지만 주로 자연을 즐기는 휴양 위주의 여행을 해왔다는 참가자 박영근 씨는 이번 화성 여행을 통해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저 이름만 막연히 알고 있던 화성이 이토록 깊은 문화예술적 콘텐츠와 역사적 의미를 풍성하게 품고 있는 도시라는 걸 깨닫게 되니, 도시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절로 생겨납니다.”
공연의 열기가 잦아든 밤, 산사는 다시 깊은 고요로 돌아갔다. 참가자들은 다음 날 새벽 6시 10분에 진행될 아침 예불을 이번 일정의 또 다른 기대 요소로 꼽았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간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심혜연 씨 역시 “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이 평소에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할 때 같아요. 낮의 열기가 가라앉은 사찰의 마당에서 새벽 산사가 주는 특유의 경건한 분위기와 차가운 공기를 어서 느껴보고 싶다”라며 기대감에 가득 차 눈을 반짝였다.
목탁 소리와 함께 시작된 이튿날 아침, 산사에서의 맑은 기운을 채운 여행자들은 오전 9시부터 전통생활문화 수공예 체험에 참여했다. 손끝으로 직접 공예품을 만들며 화성 고유의 색채를 경험한 이들은, 템플스테이 퇴실을 마친 오전 11시부터 마지막 코스인 남양성모성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천주교 신자가 순교한 아픈 역사를 간직한 성지로, 오늘날에는 대자연과 어우러진 평화와 치유의 기도 공간으로 가꾸어진 곳이다. 웅장한 자연 속에 자리한 성지 경내에서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장엄한 대성당과 고즈넉한 숲속 산책길을 걸으며, 여행자들은 1박 2일 동안 걸어온 여정의 벅찬 감동을 마음속에 조용히 매듭짓고 있었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화성이라는 도시가 정말 좋아졌어요. 아기자기하면서도 깊이가 있네요. 조만간 남편과 단둘이 꼭 다시 방문해서 이 아름다운 길을 조금 더 여유롭게 거닐어볼 생각입니다.”
참가자 이경숙 씨의 다짐처럼, 화성의 길 위에서 시작된 여행자들의 발걸음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묵직한 여운을 남긴 채,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마무리되고 있었다.


<화분> Vol.71
에디터 백미희(편집실)
포토그래퍼 김경수(싸우나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