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화성인의 시간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지?’라는 생각으로 달력만 빤히 바라보는 계절이 돌아왔다. 해마다 이맘때가 오면 가장 조용한 곳에서 종이를 펼쳐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지, 가장 아쉬웠던 건 무엇인지….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의 우리는 어떤 일상을 보냈을까?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박나영|공인중개사
기적의 이벤트 당첨

올해 2월, 아침 일찍부터 집 앞 마트에서 개업 1주년 기념 이벤트 경품을 추첨한다는 문자가 왔다. 나는 4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아주 작은 이벤트에도 당첨된 적이 없었기에 문자를 받고 추첨 행사에 참석해야하나 망설였다. 많은 고민 끝에 당첨이 안 되더라도 장을 봐 오면 되기 때문에, 롱패딩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사람이 무수히 드나드는 마트에 도착했다. 사람은 많았고, 추첨함에는 추첨을 기다리는 영수증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사회자의 진행으로 경품 추첨은 시작되었지만 역시나 내 이름은 오랜 시간 동안 불리지 않았다. 집에 두고 온 아이들 걱정에 자리를 박차고 가야 하는지 고민을 거듭했고, 어느덧 1등, 2등, 3등 당첨자 호명만을 앞두고 있었다. ‘차라리 작은 경품이라도 탔으면 지금까지 기다릴 필요 없었을 텐데.’라고 생각하던 중 내 번호가 불렸다. 3등에 당첨되었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무려 당첨금 100만 원이었다. 2020년 새로운 해를 커다란 행운으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가까운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하며 떠들썩하고 신나게 보냈던 그날이 지금도 신기하고 커다란 행운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 행운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비록 어렵고 힘들지만 연초에 가진 큰 행운이 있기 때문에 2020년은 희망차게 끝을 맺을 거라고 믿는다.

송지희|교사
제로 웨이스트 챌린지 참여

코로나 덕분에 제로 웨이스트 챌린지에 동참하게 되었다. 환경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직접 실천해 본 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내가 할 수 있는 걸 모두 해보기로 했다. 사실 그전까지 나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플라스틱 통에 담긴 반찬을 사 먹었고, 집에서 내린 커피보다는 카페에서 사 먹는 게 더 맛있다며 플라스틱 컵에 담긴 커피 수백 잔을 사 마시며 흥청망청 소비했다. 플라스틱을 쉽게 소비하던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 지금의 환경문제가 생겨났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지금부터라도 뭔가 해야겠다 싶었다.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들고, 플라스틱 컵 대신 텀블러를 내밀고, 반찬과 국은 직접 만들었다. 또한 수질오염의 주범이라는 공산품이 아닌 친환경 비누를 사서 머리도 감고 설거지도 했다. 환경을 보호하는 일은 불편하고 어려울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실천해 보니, 역시 시작이 반이었다. 뿌듯함과 동시에 꾸준히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오히려 코로나 덕분에 환경지킴이로서 새 시작을 열게 되었으니 올해는 정말 잊을 수 없는 한 해일 것이다.

이준희|강사
누나와 함께하는 바닷가 피크닉

친누나와 사이가 좋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나 함께 식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하지만 요즘엔 병원에서 근무하는 누나가 혹시라도 내게 나쁜 균을 옮길까 봐 잘 만나주지 않는다. 코로나19 이후 누나를 세 달 동안 보지 못하다가 드디어 며칠 뒤에 약속을 잡았다. 최대한 안전한 만남을 위해, 각자 자신의 차를 운전해 매향리 바닷가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사람이 많지 않은 바닷가에서 누나가 싸 온 도시락을 함께 먹으면서 피크닉을 즐기려고 한다. 아마 누나와 함께하는 이 피크닉이 올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현대|회사원
뒤늦은 진급 파티

코로나로 여행은 물론 외식에도 불안함을 느끼고 회사에서도 재택근무가 시행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코로나라는 상황과 아내가 임신하게 되어 멀리 다니는 것보단 집에 있는 일이 많아졌다. 아쉬운 시간이 이어지던 중, 나에게는 선물같이 특별한 소식이 찾아왔다. 직장을 다닌 지 약 8년 정도 되었는데, 드디어 기다리던 진급 소식이 찾아온 것이다. 소식을 전하자마자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던 가족들 모습이 떠오른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 요즘, 뒤늦게 가족과 진급 축하 파티를 했다. 뒤늦은 파티였지만 언제나 나를 응원해 주고 기뻐해 주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얼른 상황이 좋아져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싶다.

유은선|사서
친구와 함께한 따듯한 하루

개인적인 이유로 우울한 어느 날이었다. 멀리 사는 친구가 나를 위로해 주겠다는 이유 하나로 퇴근하고 우리 동네까지 달려왔다. 고마운 마음에 맛있는 걸 잔뜩 사주고 싶었지만,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변경되어 9시 이후에 모든 음식점이 문을 닫았다. 아쉬워하는 내게 친구는 “너랑 같이 있어 주고 싶은 거지,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온 게 아니야.”라고 위로해 주었다. 아쉽지만 우리는 동네 공원 정자에 앉아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랑 간단한 주전부리와 함께 담소를 나누었다. 그날 밤,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친구의 예쁜 마음이 쌀쌀한 주변 공기를 따듯하게 만들어주었고, 뽀얀 달빛과 가로등 불빛, 풀벌레 소리같이 항상 주변에 있는 것이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저 평범했던 밤의 모든 것이 흘러가는 것들이라는 게 아쉬워졌고,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면 평범한 시간도 특별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 가족과 친구들이랑 아름다운 기억을 많이 만들어 나가야겠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조미선|학생
사랑을 가득 담은 도시락

가족 여행을 앞두고 엄마와 내가 도시락을 함께 만들었던 적이 있다. 오랜만에 다 함께 여행을 간다는 생각에 설레던 기쁜 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와 알록달록한 예쁜 음식들을 만들던 그때가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기억 같다. 코로나가 얼른 끝나서 가족들과 재밌는 여행을 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박소현|프리랜서
나에게 찾아온 아기 천사

얼마 전, 나에게 정말 소중한 아기가 찾아왔다. 보면 볼수록 천사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물론 아기를 키우면서 힘든 점이 있지만, 그저 보고만 있어도 고맙고 사랑스럽다. 이 아기가 나에게 와주어서 행복하다.

에디터 김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