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Vol.71] 당신의 부케

Editor’s Letter

멀티 페르소나: 나의 스펙트럼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쇼윈도 유리창이나 카페의 통창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나요. 유리는
묘한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낮의 강한 햇빛 아래에서는 그 너머의 풍경을 투명하게 비추지만,
해가 지고 조명이 켜지면 어느새 거울처럼 내 얼굴을 또렷이 비춰주곤 합니다. 같은 유리일지라도
빛이 드는 방향과 내가 서 있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을 드러내는 것이죠.


문득 우리의 페르소나 역시 이 투명한 유리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황이나 역할에 따라 전혀 다른 면모가 튀어나올 때면 때론 낯설고 이질적인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은 모두 ‘나’라는 단단한 본질을 통과해 나온 다채로운 빛의 결들일지도 모릅니다. 내 안의 수많은 얼굴은 서로를 가리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삶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드는 다채로운 층위가 되어줍니다.
《화분》 71호는 이렇게 투명하게 반짝이는 우리 안의 수많은 얼굴을 비추어 보았습니다. 아이들의 세
계 속에서 당차게 살아 숨 쉬는 또 다른 나의 모습부터, 빛과 그림자로 삶의 아카이브를 만드는 예술가의 시선, 그리고 일상이라는 무거운 옷을 잠시 벗어두고 저마다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온전한 하모니를 만들어 나가는 이들의 진심을 담았습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나다움을 굳건히 지키면서도 나의 세계를 얼마나 다채롭게 확장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정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마주하는 나의 여러 얼굴이 비록 조금은 서툴고 낯설지라도, 그 모든 순간은 결국 당신이라는
존재를 더 아름답게 빛내주는 스펙트럼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번 호 《화분》과 함께 내 안의 숨겨진
새로운 빛깔을 발견하고 음미하며, 나를 이루는 다채로운 결을 완성해 보시기 바랍니다.

《화분》 에디터 백미희

<화분> Vol.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