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예술
AI(인공지능) 기술은 현재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삶을 변화 시키고 있을까? Siri, Google Assistant, Amazon Alexa와 같은 AI 기반 음성 비서들은 이미 스마트폰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일상화되었고, 스마트 홈 디바이스 시스템은 조명, 온도조절기, 잠금장치 등으로 우리의 삶에 더 편리한 생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헬스케어, 교통과 물류, 금융, 교육에 더해 사용자의 구매 기록과 선호도를 분석하여 개인화된 제품의 추천과 제공하는 온라인 쇼핑몰은 또 어떠한가?
그렇다. 이미 우리는 AI(인공지능) 기술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발을 들였고 길들여 졌으며 어쩌면 이미 종속되어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글. Artist 두 민
우승작인 제이슨 앨런 작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2022
몇 년 전부터는 챗 GPT의 등장과 ‘미드져니 (Midjourney)’와 같이 간단한 단어의 조합과 명령으로 그림을 그려내는 AI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들이 나오면서 미술 아니 예술의 영역에도 AI 인공지능 기술들이 아주 빠르게 기존의 예술 생태계에 큰 변화를 주고 있다.
2022년 8월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미술 박람회에서 디지털 아트 부문 우승작품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원명 Théâtre D’opéra Spatial)’이란 제목의 이 작품이 앞에서 언급한 ‘미드져니 (Midjourney)’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사용했기 때문 이었다.
‘사람이 그리지 않은 그림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이슈로 그 당시 다른 출품자들의 항의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문제 제기로 논란이 되었는데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회에 출품하는 작품이 당연히 ‘인간이 창작했을 것이다’라는 선입견 있기 때문이다. 또 작가가 그리지 않은 AI 그림을 과연 예술 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하지만 논란은 간단하게 정리됐다.
심사위원들은 심사 전에 AI가 그렸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디지털 아트 부문 규칙에 “디지털 기술을 창작 과정에 사용할 수 있다.
”라는 조항이 있고, 출품자 이름을 ‘미드져니를 사용한 제이슨 앨런(Jason M. Allen via Midjourney)’으로 명시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제이슨 앨런의 입상작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창작자의 창작 도구 즉 물감과 파렛트와 같다고 판단한 것이다. 창작자에게 이젠 새로운 미술 재료와 도구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2년 전 있었던 이 해프닝 같은 사건이 아마도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창작물이 예술이 될 수 있으냐 마느냐? 하는 인정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예술의 영역에서 공론화시키는 계기가 된 발화점이라 생각한다.
사실 2019년 10월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펄스 나인의 AI 프로그램 화가 ‘Imagine AI’와 인간 화가 ‘두 민 작가’가 협업한 작품 ‘Commune with…독도’ 작품이 창작되어 공개되고 국내에서 최초로 인공지능 기술이 들어간 작품이 거래가 되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AI가 미술의 영역에 들어온다는 것은 낯설고 대중의 관심 또한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 위에 언급한 일련의 일들이 있으면서 다시금 조명이 되고 이러한 시도에 새로운 평가를 하고 있다. 2025년 초·중·고 미술 교과서에 ‘기술과 예술’이란 카테고리에 이때 창작된 작품이 실리게 된 것도 그중 하나의 예일 것이다. 이때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Commune with….독도’ 작품을 창작한 인간 화가가 필자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다양한 AI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새로운 작품을 창작 한 작가로서 인공지능을 이용한 창작물이 예술인지에 대한 이슈에 기존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써 내려 가보려 한다.
‘Commune with…독도’ 작품을 처음 공개하는 간담회에서 첫 번째 받은 질문이 왜 “인공지능 화가와 협업을 하게 되었나?”였다. 이에 필자는 “호기심”이라고 대답하였다. 예술가 중에서 특히 미술을 하는 예술가에게 호기심은 창작에 동기가 되는 필수적인 요소이며, 자신만의 작업에서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지지 않기 위해 늘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그 새로움에 도전하다 보면 기성의 위치에 존재하는 대상 및 이념들과의 충돌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미술시장에 AI의 등장으로 이뤄진 만남에서 창작자와 AI는 충돌의 시기를 거쳐야만 하는 필수 불가결한 과정을 직면하게 된다.
여기서 AI 아트를 직접 경험한 인간 화가로서 AI 화가에게 생기는 의문점은 AI의 작품이 ‘과연 예술인가?’ 그리고 ‘AI가 화가 즉 ‘예술가’일 수 있는가?’이다.
이 의문점은 미술에 익숙한 모든 이들에게는 당연한 의문점일 것이다. 이 의문점에 대해 필자는 지극히 인간 화가의 입장에서 AI와 예술가 사이에 인간만의 창작영역이라 여겨 왔던 예술의 구분 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 지점에서 그럼 우리가 말하는 예술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두 민 작가의 국내 최초 인공지능 화가와 인간 화가 협업 회화작품 Commune with… 독도
‘인간의 창의성과 감정을 표현하고, 미적 가치를 추구하며,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예술은 우리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고,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고 정의한다.
이 글을 잘 살펴보면 예술은 결국 창작자와 관람자가 주체이다. 즉 ‘인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예술은 탄생 되지 않으며, 향유 되거나 존재할 수도 없다.’라고 필자는 정의 내리고 싶다. 예술의 주체는 인간인 것이다.
AI 아트가 지금까지 보여준 결과만으로도 이미 기술적으로 인간 화가의 창작영역에 거의 도달했음과 어쩌면 넘어설 수 있음을 일련의 전시와 작품으로 증명해주었다. 하지만 창작자이자 관람자의 입장으로만 보았을 때 무언가 빠진 듯한 허전함이 존재한다. 필자는 그 허전함이 ‘혼’(魂)과 ‘삶’(Life)이라는 두 단어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Mother’s Neural Network 194×259 oil and pigment print on canvas 2022 Midjourney AI topaz photo ai 두 민 작가
먼저 ‘혼’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의 몸 안에서 몸과 정신을 다스리는 비물질적인 것 이라 한다. 그래서 예술 작품에는 한 인간의 정신을 담아낸 혼이 깃들어 있는 작품이라고 보편적으로 이야기한다. 예술가가 작품을 하면서 느끼는 창작의 고통과 희열이 어쩌면 작가의 혼일 것일진대, 이 점에서 인공지능(AI) 화가는 태생적 불가침 영역에 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삶’이란 사는 일, 살아있음, 생명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에게 살아있음은 의식과 사고가 함께하며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역사일 것이다. 인간 예술가의 모든 창작물은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느끼며 인간만이 가지는 오감을 바탕으로 한 삶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지만, AI 아트는 인간에게 정의되는 ‘살아있음’에 해당되지 않으니 인간의 사고와 경험해왔던 미술적·예술적 결과물을 데이터화한 자료로 딥러닝(Deep Learning)을 통해 학습해야만 한다. 그 학습의 결과물만 존재할 뿐 AI 화가만의 스토리 즉, ‘역사’(歷史)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 화가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예술에는 반드시 그 행위를 영위하는 창작자가 존재한다. 미술에서 화가, 조각가가 주체가 되듯 AI 아트도 그 예술을 행하는 주체로서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AI 아트를 화가라고 말하기엔 약간의 거부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예술이라 함은 창작자만이 존재해서는 아무 의미 없을 것이다. 예술은 그것을 감상하는 주체가 있어야 하고 또한 그 예술을 소비하는 주체도 있어야 생명력을 얻고 빛을 발할 수 있다. 만약 AI 아트 작품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예술을 감상하고 소비하는 인간에게 인간 예술가가 작품 속에 담고 있는 혼과 삶을 AI 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때 예술로써 대중들에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AI와 협업에서 느낀 분명한 점은 예술의 새로운 사조(思潮) 로써 긍정적으로 보여지는 부분이다. AI의 등장은 19세기 사진기가 등장했을 때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사진기가 발명된 후 세상에 보이는 대상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화가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화가의 기술은 사진 기술에 따라가지 못해 화가가 사라질 것이라 했지만 화가들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심상(心象)에 집중해 형상을 분해, 결합, 파괴해 가면서 새로운 미술 사조를 이끌어 냈으며 현대미술의 밑거름으로 이어져 왔다. AI 기술 역시 19세기 사진기처럼 현재 최고의 기술 집약체라는 점이 동일하다. 그렇다면 이 기술을 화가들이 도구로써 창작활동에 잘 활용한다면 미술의 위기가 아니라 과거에도 그랬듯 새로운 창작의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창작 노동의 힘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새로운 기술은 예술가에게 창의적 발상을 할 수 있도록 신선한 자극제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새로움이란 늘 낯설고 그 낯설음이 우리로 하여금 경계심 (警戒心)을 만들지만 우리는 그 경계의 선을 용기 내어 한 걸음 넘어 딛게 되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진다는 것을 우리 삶 속의 경험으로 알기에 AI 기술의 등장을 두려워하거나 배척하기보다 기꺼이 함께 즐겁게 상생(相生)하는 것이 어떨까?
Artist 두 민
감탄은 어떤 무언가에 놀라는 순간을 표현할 때 쓰이고, 감동은 어떤 무언가에 크게 느껴 마음이 움직일 때 쓰인다. 감탄과 감동은 인간의 마음에 울림을 전하며 삶에 연속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마법 같은 단어이다. 예술은 감탄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절대적 가치가 있을 것이다. AI 기술은 기술적 진보로 인간에게 ‘감탄’을 준다는 점에서 예술로써 이미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었다. 하지만 창작자인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감동’으로 오랫동안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존재케 하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AI 기술도 인간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예술로 발전되길 동행자(同行者)로서 응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AI가 만들어낸 제작물이 예술인지 아닌지 지금 서둘러 결정을 짓기보다 앞으로 예술가들과 ‘동행’이 가능할 때까지 잠시 기다려보자. 인간이 주체인 예술가들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 항상 그 시대의 기술에 앞서 정신적 산물로써 예술을 승화시켜 왔다. AI 기술과 창작자인 예술가가 비로써 동행이 가능할 때 예술은 다음 단계로 진화 할 것이라 믿는다.
2023 문화유산 미디어아트 수원화성_미디어홀 / 인공지능 AI를 이용한 미디어아트 두 민 작가 설치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