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의 예술과 문화 그리고 인간 감정의 그 특별함
글.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국가AI위원회 위원 / 고려대학교 감성지능전략 LAB)
AI 문화예술 시리즈Ⅰ
AI가 만들어낸 예술도 예술로 인정할 수 있나요?
AI 문화예술 시리즈Ⅱ
AI 창작물,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나요?
캘리포니아 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인공지능 전문가인 데이비드 코프 는 이미 1980년대에 인공지능 기술로 음악을 창작하는 시도를 했다. EMI(Experiments in Music Intelligence)라는 실험이다. 코프 교수는 7년 동안 클래식 명곡들을 인공지능 시스템에 입력하면서 유명 음악가들의 고유한 스타일과 악보 구성 패턴을 학습시켰다. 그리고 그 요소들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인공지능형 클래식 음악 작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EMI는 완성된 후 단 하루 만에 바흐 스타일의 오페라를 5,000곡이나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면 이러한 AI가 생성한 오페라는 예술작품인가, 아닌가?
당시 언론과 전문가들은 예술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인공지능 컴퓨터 알고리즘의 위대한 승리라고 흥분하기도 했다. AI가 창작의 영역으로 들어왔으며 예술가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EMI가 창작한 곡이 진정 예술적 감동이 있는 음악이었다면 대중은 계속 찬사를 보냈을 것이다. EMI가 음반을 발매했을 때 인공지능이 작곡한 음악이라는 점에서 잠시 화제를 모았지만, 결국 상업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창작자로서의 의식과 자각,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평가 때문이었다. EMI는 음악 속에 감정을 담기는 했지만,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영감까지는 불어넣을 수 없었던 것이다.
최근 비슷한 사례가 있어 하나 더 소개해본다.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한 점의 초상화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름 모를 귀족을 묘사한 듯한 이 초상화는 사실 사람이 아닌 AI가 창작한 작품이었다. “에드먼드 드 벨라미 (Edmond de Belamy)”로 명명된 이 작품은 프랑스의 예술 단체 오비어스(Obvious)가 GAN이라는 AI 알고리즘으로 제작한 것이다. 경매 시작가는 7,000달러였지만, 최종 낙찰가는 무려 43만 2,500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AI가 예술의 본질적 정의를 재고하게 만든 사례로 평가된다. 전통적으로 예술은 인간의 감정, 철학,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조적 행위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초상화는 AI가 인간 창작자와 별개로 독립적인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예술 창작의 중심에 있는 ‘인간성’의 역할과 경계를 새롭게 설정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이 두 사례는 AI가 단순히 기술적 도구로 머무르지 않고, 예술 창작의 경계를 넓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는 예술가에게 새로운 스타일과 표현 방법을 제안하고, 창작 과정을 혁신적 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AI는 그 창작품에 자신의 감정과 영혼 그리고 그 완성의 희열까지 불어 넣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또한 생긴다.
미스터 왓슨은 퀴즈 경쟁에서 이기긴 했지만, 승리를 기뻐하지는 못했다. 당신은 왓슨의 등을 두드 리며 축하해줄 수 없고, 함께 축배를 들 수도 없다. 로봇은 이런 행동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AI가 가져올 사회를 ‘특이점’ 논쟁과 함께 제시한 미래학자 존 설(John R. Searle)이 한 말이다. 지금까지 지능 엔진으로 작동하는 대부분의 알고리즘 기계는 자신이 수행하는 작업의 의미나 가치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 세계인 감정계는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한마디로 복잡계다. 우리는 매 순간 감정을 느끼며 살지만 왜 그런 감정이 생기는지 다 알 수가 없다. 영화를 보다가 같은 장면에서 다른 사람들은 담담해 보이는데 나만 눈물이 흐른다. 이유가 뭘까? 기쁠 때 우는 눈물과 슬플 때 우는 눈물은 같은가, 다른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 캐서린을 향한 히스클리프의 마음은 사랑일까, 집착일까? 혹시 다른 사람보다 예민한 기질이라면 내면적 성향인지, 주변에 영향을 받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감정은 대부분 설명하기 어렵고, 명쾌하지 않으며,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AI 기술의 발전이 예술과 창작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 창작자가 그 전통과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고민은 무엇일까? 창의성과 기술 활용 능력, 감정적 지능, 협업 능력, 그리고 지속적 학습과 적응력을 중심으로 간단하게 얘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창의성의 문제다. 이는 인간 고유의 창조적 발상이다. AI는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여 새로운 패턴을 생성할 수 있지만, 인간처럼 본질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거나 모순된 개념을 융합하는 능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예술의 본질은 인간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 철학, 그리고 독창적인 상상력이다. 따라서 인간 창작자는 자신의 창의적 발상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히며,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발상 훈련을 통해 예술적 정체성을 확장 시켜야 할 것이다.
둘째로 이제는 AI 도구를 창작의 파트너로 생각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거나 반복적인 작업을 자동화해 창작자가 본질적인 아이디어 구상에 집중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창작자는 AI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창작도구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을 갖춰야 한다. AI를 단순히 경쟁자가 아니라 조력자로 인식 하는 사고 방식 또한 중요해 보인다.
셋째, 인간은 경험과 공감의 통찰력을 갖춘 감성 지능을 갖고 있다. AI가 수많은 데이터를 처리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다고 해도,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내면을 깊이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인간 창작자는 이러한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 감정에 더 집중함 으로써 AI와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AI와의 창의적 협업이 필요해 보인다. 예술은 인간의 고통, 기쁨, 갈등, 그리고 사랑과 같은 보편적 경험을 전달하는 매개체다. 인간 창작 자는 공감 능력과 정서적 깊이를 기반으로, 감정적으로 울림이 있는 작품을 만들게 되면, 이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예술적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AI가 가져오는 변화 속에서 지속적 학습과 적응력을 갖추며 성장하기를 지속해야 할 것 이다. 최신 트렌드와 기술에 대한 민감성은 창작자의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다. 실패와 실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새로운 창작 가능성을 탐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는 창작자가 AI 시대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하는 핵심 전략일 것이다
철학자이자 하버드대학 법대의 로베르토 웅거(Roberto Unger) 교수는 “인간은 인간의 맥락을 뛰어 넘는다.”라는 역설적인 말을 남겼다. 인간이 가진 태생적 비과학성과 기계로 극복할 수 없는 그 특별함을 언급했다. 그 어떤 기술과 사회 제도도 모든 인간을 다 포용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래전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Immanuel Kant) 역시 “인간은 휘어진 통나무와 같아서, 거기에서는 그 어떤 올곧은 것도 나올 수 없다.”고 선언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AI가 가져올 미래가 궁금하다. 인간 만이 가져왔던 그 특별함을 어떻게 유지하고, 또 새로운 기술과 공존해 나갈 것인가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