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실패의 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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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반동

프랑스의 안무가 요안 부르주아(Yoann Bourgeois)의 행위예술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한 남자가 계단 모양의 구조물을 오르기 시작한다. 몇 걸음 오르다 못해 남자의 몸이 옆으로 기울며 떨어진다. 다행히도 계단 옆에는 트램펄린이 설치되어 있다. 남자는 트램펄린의 반동에 힘입어 튀어 올라 다시 계단을 오른다. 오르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던 남자가 겨우 계단의 맨 위 칸에 발을 디뎠다. 그런데 다시 옆으로 쓰러지고 만다. 이번에는 트램펄린의 반동도 약해져 도무지 다시 올라갈 수 없을 것 같다.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등을 튕겨 반동을 키운다. 몇 번의 움직임 끝에 결국 꼭대기에 발을 디딘다. 우리는 추락을 두려워하지만, 추락의 반동이 우리를 목적지에 데려다주기도 한다. 그의 퍼포먼스를 촬영한 이 영상에는 ‘성공은 선형이 아니다(Success Isn’t Linear)’라는 제목이 붙었다.

요안은 ‘중력을 갖고 노는 안무가’로 불린다. 그의 작품에는 중력이라는 힘에 이끌려 넘어지기 직전까지 가고 마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담긴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방해하는 힘을 견디며(어떤 부분에서는 즐기기도 하며) 아슬아슬하게 버틴다.

어쩌면 사회가 정한 ‘성공’을 위해 아등바등하는 우리의 잰걸음도 그저 버티기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궤도에 편입되지 않는 혼자만의 우주가 필요하다. 그 우주에서는 각자의 중력대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2025년의 봄과 여름 사이를 지나는 《화분》은 ‘챌린지(Challenge)’를 주제로 이야기를 모았다. 여기서 챌린지는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똑같은 보법으로 걷는 게 아닌, 각자의 중력 속에서 잘 유영하자는 의미다. 성장도 경쟁하는 시대에서 나만의 속도대로 나아가는 과정. 주변을 돌보며 걸어가는 느린 완주.

올해부터 화성시문화관광재단은 기존의 문화예술 영역뿐 아니라 관광·여행 분야에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한다. 나를 가두는 테두리를 조금씩 깨나가는 일은 그 자체로 명예롭다. 이 명예로운 도전 앞에 선 재단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까. 안필연 재단 대표이사를 만나 들어봤다. 더불어 자기만의 속도로 작품을 짓는 예술가 박준범의 인터뷰도 담았다. 사랑이라는 인류의 가장 큰 고민거리를 다룬 연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의 연출 서충식, 배우 최하윤은 그들만의 언어로 사랑을 정의했다.

때로 삶의 여러 고민을 해결하는 데 좋은 영화가 도움이 되기도 한다. <보이후드>(2014),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2017), <굿바이>(2008)의 주인공들은 실패와 좌절을 겪지만 다시 일어나 내일을 향한다. 묵묵히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당신의 걸음도 추진력을 얻을지 모를 일이다.

《화분》 에디터 차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