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7] ‘적당한 거리’라는 미덕
유독 식물을 못 기르는 사람이 있다. 식물은 건조해 시드는 경우보다 과습으로 죽는 경우가 많아 물을 적당히 줘야 한다는데, 그 ‘적당히’가 어려운 사람들이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그 대상이 사랑받아야 할 방식대로 사랑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에게 각자 필요한 만큼의 사랑이 있듯 식물에도 필요한 만큼의 물의 양이 있다. 상대를 아끼고 신경 쓴다는 핑계로 쏟아붓는 무리한 사랑은 해가 된다.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애정의 대상을 죽이기 일쑤다.
여기저기서 ‘무해함’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말 그대로 해가 되지 않는다는 뜻인데, 생각해보면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게 호감을 사는 일보다 어렵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필요한 것은 적당한 거리다. 내가 남과 같지 않다는 것, 내 마음이 상대에게 부담이 되거나 오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마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는 아름답다.
사랑과 잔소리가 동의어처럼 취급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냥 무해한 것을 원한다. 나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무언가를. 그러나 상대가 나를 바꾸려 하지 않는 것처럼 나 또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무해한 관계의 핵심이다.
여름을 지나는 《화분》에서는 모든 존재 그대로의 사랑스러움을 가득 담았다. 한적한 마을에서 펼쳐지는 연극 예술 축제, <마주페스타>에서 뛰노는 무해한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화성시 예술단 국악단의 김현섭 예술감독은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국악을 경험하고 사랑하게 되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바퀴 달린 성악가’ 이남현은 모두에게 무해한 환경을 꿈꾸며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로 무대를 채운다.
무해한 존재를 원하는 만큼 우리는 반대로 세상에 무해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비건에관심이 있다면 비건 디저트 레시피를 따라 홈베이킹에 도전해보면 어떨지. 자연 재료인 흙을 이용한 예술, 도예는 정신없는 일상에 작은 휴식이 되어줄 수 있다.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면 화성시 ‘촌캉스’ 코스를 따라가 보는 것도 좋겠다. 너른 서해를 따라 조금 느린 하루를 보내고 나면 바쁜 일상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걷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화분》 에디터 차예지